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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온 편지] '내 안의 감옥'으로부터의 편지

사랑하는 딸!

안녕, 여기는 행복공장 수련원이 있는 홍천의 '내 안의 감옥' 속 1.5평의 독방 안이야! 가족 카톡방에 2시부터 앞으로 20시간 정도는 연락이 안될 것이라고 알렸더니 아빠가 전화를 했더구나. "득도해!"라는 농반 진반의 '격려'를 남기고 휴대폰 너머로 아빠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휴대폰을 문 아래쪽에 뚫린 배식구 밖으로 내놓자 이제 진짜 세상으로부터 절연된다는 가벼운 긴장감이 들었다고 하면 너는 믿겠니?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참담한 현실을 마주하고, 행복공장으로부터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성찰해보는 프로그램을 추진해보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그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감옥'이나 '독방'에 가두는 형식이 꺼려진 것은 사실이야. 대학 시절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기도 했던 사람으로서 스스로 구속을 선택한다는 것이 여간 거북하지 않았거든. 더군다나 이 나라에서 감옥의 이미지는 얼마나 끔찍하니?

하지만 이 독방은 꽤나 정갈하다. 커튼으로 가려진 양변기와 작은 세면대, 작은 서랍장, 그리고 책상, 다탁, 받침대 등으로 두루 쓰이는 조그마한 책상 하나가 있다. 창밖에는 싹 틔울 준비에 여념이 없는 잘 생긴 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이것 이외엔 나를 방해할 일상도, 나를 유혹할 책도, 심지어 나를 위무할 음악조차도 없다. 수련원 쪽에서 마련해준 전기주전자와 일인용 다구가 그나마 위안거리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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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

이렇게 모처럼 온전히 혼자가 되었으니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써볼 생각이다. 수련원 쪽에서 마련해놓은 안내서를 길잡이 삼아. 안내서엔 '지난 삶 돌아보기,'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가장 불행했던 순간,' '지난 삶에 대한 중간 재판' 등 여러 가지 생각거리의 예시들이 있단다.

10대, 20대, 30대... 각 시기에 내 인생의 주요 변곡점을 정리하고, 그 가운데 행복했던 순간, 가슴 아팠던 순간들을 정리해 나갔다. 사랑하는 딸들과 각각 함께했던 여행이 행복했던 순간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가슴 아픈 순간의 앞자리는 부모님을 여의었던 일이 차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지. 그런데 말이다. 그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순간, 가장 불행했던 순간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다가 스스로도 놀라고 말았단다. 행복과 불행이란 감정이 극히 사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해왔건만, 내게 가장 불행했던 순간은 80년 5월 17일 전두환의 쿠데타였고, 가장 행복한 순간은 한겨레신문의 창간이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린 순간 지난번 네가 했던 말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너는 "왜 엄마는 한 번도 우리들을 위해 바쁜 신문사 대신 좀 더 시간을 많이 낼 수 있는 직장으로 옮기려는 생각을 안 해봤어?"라고 물었었지. 당시에는 그것이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며, "이젠 엄마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게 됐지만, 당시의 서운한 감정조차 없었던 것으로 돌릴 순 없다"고도 했고. 그런 너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역시 엄마는 가정이나 가족보다 자신의 일과 사회적 문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 거야'라고 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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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랑하는 딸!

너도 알다시피 엄마 아빠는 80년 5월에 결혼했다. 한때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아빠는 당시 복학생이었고, 엄마는 신문사 기자였지. 당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된 뒤 군부가 지배하는 계엄 상태였지만, 그래도 민주화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이 존재했었다. 언론계에서도 박정희 정권 아래서 짓눌려온 언론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벌어지고 있었지. 그러나 전두환의 쿠데타는 그 모든 희망을 완전히 짓뭉갰다. 민주화를 주창하던 사람들은 감옥으로 끌려갔고, 언론자유를 부르짖던 많은 선후배들과 함께 엄마도 강제해직됐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밟혀 나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 후 다른 일터를 찾아 밥벌이는 할 수 있었지만, 자유언론에 대한 갈망은 가슴 속에 화인처럼 남았다. 당시에는 가족과의 단란하고 행복한 삶 속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구나. 그 빈 공간이 마침내 채워진 것이 한겨레신문의 창간이었어. 자유롭고 민주적인 언론을 바라는 국민들의 귀중한 성금으로 최초의 독립언론이 만들어졌고, 엄마도 그 한 모퉁이를 차지할 수 있게 됐으니 어떻게 기쁘지 않았겠니?

물론 이렇게 정치적 사건이 자신의 삶에 직접 영향을 끼쳤다고 여기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어느 누구도 우리 정치, 우리 사회의 변화와 무관하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당장 우리가 다섯 달 가까이 매주 촛불을 들고 추운 거리로 나와야 했던 것도 정치가 우리 삶에 직접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산 증거잖니? 1997년 외환위기 때는 또 어땠니? 김영삼 정부의 무능한 위기 대응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앉았지. 엄마가 특파원 생활을 접고 중도 귀국한 것도 외환위기 때문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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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사회의 문제, 우리나라의 문제에 대해서 눈감지 말고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해. 당장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서도 농단의 주범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등에 대해서 엄격하게 책임을 묻는 것과 더불어,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방치한 우리의 책임에 대해서도 반드시 되돌아봐야 할 거야. 박 전 대통령의 한계, 최순실의 존재를 번연히 알면서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눈감은 과거 새누리당 인사들, 진실에 눈감고 권력을 옹호하기에 급급했던 검찰 등 사법기관, 독립적 자유언론이기를 포기하고 권력의 나팔수를 자임했던 수구언론들이 누구보다 큰 책임을 느껴야겠지. 하지만 팍팍한 삶을 핑계로 그들의 궤변을 따져볼 생각도 않고 이 나라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권리를 포기했던 우리들의 책임도 적다고는 할 수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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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인데, 사랑하는 딸!

이제 촛불시위 과정에서 수없이 외쳤던 "우리가 주인이다"라는 말의 무게를 결코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외쳤듯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은, 우리가 이 나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주체라는 것이겠지? 주인으로서 우리가 져야 할 가장 큰 책임은 이 나라를 온전한 민주공화국으로 지켜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우선 이번 선거에서 제대로 된 공복을 뽑고, 그 공복에게 주인인 국민의 뜻을 잘 받들어, 더 나은 나라를 만들도록 요구하고 제대로 하는지 감시할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지. 역시 사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게 공적인 이야기로 흘러갔구나. 엄마보다 더 성숙해진 딸이니 이젠 엄마의 이 병을 이해하고 용서하겠지? 


진심으로 너를 사랑했으나 언제나 부족했던 엄마가,
홍천 독방에서

글 | 권태선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참가자)


원문보기 :
http://www.huffingtonpost.kr/taesun-kwon/story_b_156491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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