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감옥에서 온 편지 13] 5분만이라도 내 마음 속으로 고요히 들어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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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행복공장은 ‘성찰을 통해 개개인이 행복해지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와 갈등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습니다. 3월부터 5월까지, 9월부터 12월까지 매주말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1.5평 독방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24시간의 고요를 통해 내가 새로워지고 우리 사는 세상이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happitory.org/relay_intro 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감옥에서 온 편지 13] 5분만이라도 내 마음 속으로 고요히 들어갈 수 있다면...
지난 2월초였던가? 미황사 금강스님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행복공장의 <릴레이 성찰 프로젝트-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24시간>이라는 프로그램의 추진위원을 맡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쉽게 수락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나 프로그램의 취지가 너무 좋아서 결국 동의하고야 말았다. 그렇지만 <리틀 포레스트>의 촬영 등으로 인해 시간을 내기가 녹록치 않아서 5월 20일에야 겨우 참가할 수 있었다.
홍천의 행복공장에 도착한 느낌은 매우 '단정하다'는 느낌이었다. 도로에 인접한 공장위치도 꽤 인상적이었는데 보통 명상을 하거나 조용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장소는 도로에서 안쪽으로 많이 들어간 곳을 선호하기 때문이었다. 공간설계자의 탄력성과 유연성이 마음에 들었다.
날씨가 좋아 다른 때보다 취소자가 많아서 열 두어 명의 참가자가 전부였는데 참가동기와 면면들은 아주 다양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시간이 있은 후 절하는 방법을 배우고 나서 2층 식당으로 이동했는데, 채식으로 마련된 정갈한 뷔페음식들은 내 입맛에 모두 잘 맞았고 이후 석식과 다음날 조식으로 준비된 음식들도 소박하고도 부드러워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데 도움이 되었다. 다기와 이불 등 최소한의 물품만 갖추어진 1.5평이라는 공간에 들어섰을 때 의외로 좁거나 답답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마 창문 밖으로 보이는 시원한 풍경 덕분일 것이리라.
오후 2시 즈음 입실하여 다음날 10시 정도에 퇴실하는 일정이니 20여 시간의 조용한 시간이 오롯이 내게 남겨졌다. 수면으로 7~8시간 정도를 뺀다 하여도 스마트폰이나 읽을거리 없는 12시간과 대면하여야 하는 숙제가 주어진 것이다. 막막하게 느끼는 참가자들을 도와주기 위해 주최측에서 준비한 워크북이 있었는데, 각자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통해 불행한, 혹은 행복한 순간을 그래프로 표기하며 정리하다보니 의외로 나의 삶이 불행한 일보다 행복한 일이 더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 나의 인생을 돌아보며 기소-변호-판결을 내리는 항목도 있었는데, 변호와 판결의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자신에게 더 관대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80대가 된 자신이 현재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부분도, 지금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더 크게 인식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워크북을 마치고 나서는 그동안 바빠서 많은 마음을 쓰지 못했던, 내가 일하고 있는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활동가들에게 마음의 편지를 썼다. 조직의 대표로서 활동가들에게 하고 싶었던 당부의 말을 적으면서 내가 동물보호 활동에 대해 가지는 애정의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어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호흡명상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니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나쁜 습관들에 대한 생각이 이어졌다. 개선과 변화의 결심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심이 반복되면 언젠가는 성취하는 경험이 있었기에 다짐만으로도 성과가 있다고 느꼈다.
사실 현실적으로 20여 시간을 내자면 못 낼 사람이 뭐 그리 많겠는가만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쫓기듯 등 떠밀리며 살고 있다. 비록 타의에 의해 주어진 기회였지만 이번 릴레이 성찰 프로그램은 지나간 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앞으로 남은 시간들 또한 더 명확하게 구상할 수 있었으며 지금의 잘못된 습관에 대해 성찰하게 해 준 고마운 시간이었다. 성찰의 공간과 시간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지혜로운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좌복 위나 조용한 공간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단지 5~10분만이라도 내 마음 속으로 고요히 들어갈 수 있다면 당신의 성찰과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글 | 임순례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참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