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감옥에서 온 편지 11] 따로 또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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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행복공장은 ‘성찰을 통해 개개인이 행복해지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와 갈등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습니다. 3월부터 5월까지 매주말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1.5평 독방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24시간의 고요를 통해 내가 새로워지고 우리 사는 세상이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happitory.org/relay_intro 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감옥에서 온 편지 11] 따로 또 같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남편이 어디든 함께 다니고 싶어해서 나 혼자 어딜 가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같이 가는 수밖에 없다. 남편에게도 나쁘지 않은 선물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와 나는 어느 화창한 5월의 토요일, 길을 나섰다.
'혼자 있기 위해 같이 가는 것이다.'
그 고즈넉하고 차분한 초록의 산자락에 사람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찾으러 간다. 그리고 20여 시간의 완전한 자유를 자기만의 독방에서 누린다.
사실, 어디서나 우리는 얼마든지 혼자 있을 수 있다. 화장실에서나 샤워할 때나, 혹은 쇼핑이나 여행, 또는 잠을 잘 때도 원한다면 얼마든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왠지 그런 일상 속 혼자만의 시간은 진정으로 온전히 혼자 누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
수명이 다돼가는 배터리처럼 언제부턴가 쉽게 지치고, 좀 쉬고 싶다고 종종 중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했을 즈음, 나는 우연히 행복공장의 릴레이 성찰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다. 독방에서 혼자 1박 2일을 지낼 수 있다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라니!
'앗, 저 곳엔 내가 가야 해!'
주저 없이 신청서를 날린 그날부터 나는 그 초록 산자락의 독방에 갇힐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궁금해 죽겠다는 남편을 끌고 홍천에 도착했다. 역시 남편은 흥미로워했고 일정이 끝났을 때, '생애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며 소감을 밝혔다.
날마다 밤잠 설쳐가며 일하는 일생 중에 겨우 하루정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큰일이 나지는 않는다. 세상과의 연결고리 같은 휴대전화를 하루정도 외면했다고 해서 특별한 일도 없었다. 결국, 그 모든 일상의 조바심과 불안과 걱정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나 역시 날마다 똑같이 반복되는 사소한 일상에 싫증나고 지쳐있었다. 모든 일과를 내가 시작하고 끝내야 한다는 강박증과 조바심이 스스로를 괴롭혔던 것인지도 모른다.
마침내 20여 시간 동안 주어진 아늑하고 고요한 독방에 누워 실컷 잠을 자다가 뒹굴다가 배식구로 넣어주는 정갈하고 담백한 식사를 먹는다. 그리고 도시에서 홀로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쉴 때는 미처 더듬어보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멀리 시간과 비용을 치러가며 찾아오는가.... 그것은, 혼자만의 공간에 머무르며 자신의 생각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형식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하기 전 출발선에 서서 숨을 고르는 것처럼, 스스로의 내면에 침잠하기 위해 갖춰져야 할 형식이란 즉, 이와 같은 자연 속, 이와 같은 독방을 향해 달려오는 동안 그 방에 스스로 들어가 갇힐 마음의 각오를 하고 생각의 수문을 열어젖힐 준비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그로써 마침내 자신만의 방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닫힌 마음을 열고 먼지 낀 생각의 퍼즐조각들을 쏟아 부어 과거를 더듬고 현재를 조망하며 좀 더 빛나는 미래로의 확장을 열렬히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 아내와 남편, 너와 나...우리는 모두 더불어 살아야 할 존재들이다. 함께 살아가야 하기에 더욱이, 가끔은 자기만의 고요한 방에서 완전하고 절대적인 휴식과 달콤한 반성과 새로운 설계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따로, 그러나 또 같이' 살아야 하는 불완전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글 | 유정화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참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