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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행복공장은 '성찰을 통해 개개인이 행복해지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와 갈등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습니다. 3월부터 5월, 9월부터 12월까지 매주말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1.5평 독방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24시간의 고요를 통해 내가 새로워지고 우리 사는 세상이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행복공장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감옥에서 온 편지 15] 화려한 다른 어떤 여행보다...

주어진 과제와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신경쓰지 않고 마음과 머리를 맑게 비워보고 싶었다. 주말에도 분명 몸은 쉬고 있는데도 늘 마음은 쫓기는 기분이었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일상의 무게 앞에서 그저 미뤄두기만 했다. 이러저런 이유로 마지막 주에야 참여하게 된 릴레이성찰 독방 24시간 프로그램. 오리엔테이션을 끝내고 핸드폰을 반납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외부와 단절된다고 생각하니, 독방에 입실할 때 잠시 긴장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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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으로 보이는 큰 창문 앞에 단촐한 책상 하나와 차를 마실 수 있도록 준비된 소박한 다기가 놓여 있다. 마음이 차분해 졌다. 독방체험이니까 혹시 고립감이나 답답함이 느껴지면 어쩌나 걱정도 약간 했었는데, 오히려 이 낯선 방문자를 환대해 주는 존재들이 거기 있었다. 바로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들과 햇살, 그리고 새소리와 바람이었다. 처음 한 동안 가만히 앉아 천천히 차를 마시면서 흔들리는 나뭇잎과 시원한 바람을 충분히 느껴보았다. 각자의 몫으로 주어진 삶을 소란떨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이며 주변과 어우러져 살고 있는 자연의 모습을 통해 다시금 삶의 지혜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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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고 고요한 침묵만이 주변에 가득하다. 뉴스도 없고, 휴대폰도 없고, 책도 없다. 외부의 모든 자극과 소음이 사라진 적막한 공간에 홀로 있으니, 내면의 움직임에 민감해지고 오감이 깨어나는 것 같다. 천천히 음미하는 차 한모금, 밥 한숟갈, 과일 한 조각을 과연 내가 언제 이토록 생생하게 느껴본적이 있었나 싶다. 평소에 무의식적으로 흘려보낸 것들, 눈길을 주지 못했던 존재들이 눈에 보였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했던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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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찾아오고 독방도 조금 익숙해 졌다. 문득 어쩌면 최대한 단촐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1.5평 작은 공간만으로도 충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 사는데 그렇게 넓은 공간, 많은 것들이 필요했던가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잡동사니들을 채우고 사는지 화들짝 놀랐다. 치장하고 소유하느라 하나 둘 쌓인 수많은 물건들을 떠올리자니 불안하고 공허한 내 마음의 흔적들을 보는 것 같았고, 버리지 못한 많은 책들도 결국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안간힘처럼 보여서 갑자기 스스로 참 안됐다는 감정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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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알람을 세개나 맞춰놓고 자도 피곤할 때는 간혹 놓치기도 하는데, 공기가 좋아서인지 정신이 맑아서인지 6시 이른 아침, 어디선가 들려오는 오르골 소리같은 작고 청아한 소리에 눈이 떠졌다. 가벼운 몸으로 일어나 이불 정리와 세면을 마친 후, 창문을 열고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을 맞이했다. 그리고 맑은 정신으로 백팔배를 했다. 처음으로 끝까지 해본 백팔배를 통해 나는 또 한번 몸을 다스리는 일이 마음을 다스리는 일임을 깨닫는다. 낮추고 엎드리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도 낮아지는 것 같았다. 절을 할수록 나이만큼의 부족했던 지난 날의 허물들이 떠올라서 눈물이 났고, 오늘의 내가 존재하기까지 나를 키우고 만들어준 귀중한 많은 인연들이 떠올라서 그들에게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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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짧을 수도 있고 혹은 길 수도 있는 시간이다. 어떤 방해도 없이 독방에서 오롯이 내 자신의 내면을 마주했던 이 고요한 시간이 또 그리워질 것 같다. 화려한 다른 어떤 여행보다 값진 시간으로 내 마음에 새겨져 있다.

글 | 박선희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참가자)




원문보기 : 
http://www.huffingtonpost.kr/happitory/story_b_171147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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