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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행복공장은 ‘성찰을 통해 개개인이 행복해지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와 갈등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습니다. 3월부터 5월까지 매주말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1.5평 독방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24시간의 고요를 통해 내가 새로워지고 우리 사는 세상이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happitory.org/relay_intro 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감옥에서 온 편지 9] 참 잘 도망왔다


나는 어려서 지리산자락 조용한 시골에서 자랐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해질 때까지 놀다가 땀에 흠뻑 젖어 들어오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벌레나 곤충이 보이면 하루 종일 풀밭과 구정물에서 뒹굴다가 왔다. 점차 크면서 도시로 나왔는데, 그 때는 또 그런대로 도시의 삶을 동경하며 좋아했다. 흔히들 하는 젊은이의 야망과 허세도 누구보다 부려보고 싶었다. 그렇게 열심히 경쟁하며 사는 것이 미덕인 줄 알고 20대를 보냈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위해 다시 시골로 들어갔다. 3년 동안 전라도 산속에서 공중보건의 생활을 했다. 어느새 도시에 적응된 나는 이 답답한 시골 생활을 어떻게 3년이나 보낼까 걱정도 했었다. 그렇게 억지로 주어진 한적한 시골에서의 3년은 경쟁과 채찍질에 길들여진 나를 잠시 멈추게 한 시간이었다. 물론 지금은 가장이 되어 다시 도시로 나와 돈벌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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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새 없이 내 모든 에너지를 다 써야만 하루를 마무리 하는 삶이 힘들었다. 그래서 도망가고 싶었다. 그런데 도망칠 용기도 방법도 몰랐다. 그래서 그냥 또 그렇게 끌려 다니는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나뿐만 아닐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점점 이와 정반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자아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직장을 관두고, 숨겨뒀던 이상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몇 년씩 여행을 다니거나, 현실의 삶보다는 이상을 꿈꾸며 사는 삶이 멋있고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그 둘 다의 모습을 보며 겁이 났다. 그런 삶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그래서 잠깐 멈춰서 생각 좀 해볼 겸 도망칠 곳을 찾은 곳이 이 곳이다. "내발로 들어갔다가 내발로 나올 수 있는 감옥이라니..." 우연히 이 곳에 대한 소개글을 보고, 너무 반가워서 보자마자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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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는 길에 든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낮잠을 늘어지게 자보자~ 아무런 방해 없이!"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방에 들어갔다. 이불을 펴고 누우니 바로 잠이 들었고, 해 질 녘에 눈이 떠졌다.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며 해 지는 모습을 천천히 바라봤다. 해지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오랜만에 해지는 하늘을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고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풀 냄새를 맡으면서, 자연스레 어렸을 때 기억이 떠오르며 잠시나마 추억에 젖기도 했다. 공책을 펴서 이것저것 적다가도 아무것도 하지말자는 결심에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그만큼 아무것도 안하는 순간이 너무 어색하고 불안한 삶이 돼버렸다. 아침에 눈을 뜨고 다시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제는 해가 지는 동안을 천천히 바라보았고, 오늘은 해가 뜨는 시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108배를 알리는 방송이 나왔지만, 처음에는 일어나지 않았다. '멍'은 어제 오늘 충분히 때렸고,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나는 해보고 가자라는 생각에 두 번째부터 일어나서 절을 하기 시작했다. 설에 하는 세배 외에, 절을 따로 해보기는 처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절을 하면서 그 동안 참아왔던 감정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방송에서 나오는 목소리도 한 몫 했지만, 바닥을 향해 납작 엎드려 온 숨을 내 뱉고 잠시 멈추는 동작이 내 안의 어떤 것을 건드리는 느낌이었다. 그런 감정에 빠져볼까 했지만, 그마저도 비우고 싶어서 아무 생각 없이 108배를 마쳤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고 개운했다. 오랜만에 새벽에 몸을 움직여보니 보람도 있었다. 잠시 후 문 밑으로 들어온 아침을 먹고, 드디어 석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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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자아를 찾아 떠나라'는 사람들처럼 현실을 버리고 떠날 용기는 없다. 그렇다고 현실을 누구보다 잘 살아낼 그릇도 가지지 못했다. 24시간 동안 갇혀있는 기회를 통해 그 둘 다를 지킬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다.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다 버리고 이상과 자아를 찾아 현실을 떠나는 사람들보다, 고단한 삶을 버티면서 사는 사람들이 어쩌면 더 용기 있는 삶이라고. '어떤 말도 충고도 없이, 듣고 있을 뿐이지만 든든한 힘이 되는 친구'처럼, 이 방은 가끔 찾아가면 현실을 열심히 사는 우리에게 묵묵히 응원을 보내주는 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 | 박상천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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