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국내 [감옥에서 온 편지 2] 고마워라. 나만의 시간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행복공장은 ‘성찰을 통해 개개인이 행복해지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와 갈등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습니다. 3월부터 5월까지 매주말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1.5평 독방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24시간의 고요를 통해 내가 새로워지고 우리 사는 세상이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happitory.org/relay_intro 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감옥에서 온 편지 2] 고마워라. 나만의 시간

 

 

 

 
나는 마흔 여섯 평 아파트에 부모님, 우리 부부, 딸 셋, 이렇게 여섯 식구와 함께 산다. 직장 다니는 딸 둘은 주중에 서울에서 지내니 평소엔 다섯 식구가 함께 생활한다. 방은 모두 네 개, 그래도 나만의 공간은 없다. 굳이 필요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나는 풀어진 내 삶을 다시 팽팽하게 만드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때마침 시작된 24시간 독방 프로그램, 나에겐 독방보다 그 24시간이 필요했다.
 
독방에 들어서서 문이 밖에서 잠기는 소리를 들으며, 가장 먼저 108배를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에 드리는 절이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 기억조차 없고, 다시 절을 시작하겠다며 절 방석을 거실에 꺼내놓은 지도 한 달이 넘었다. 툭! 툭! 갑작스러운 운신에 몸 여기저기서 소리가 났다. 절을 거듭할수록 고관절과 발목이 불편했다. 아마 자세 때문에 틀어진 모양이다.
 
happitory_img_02_02.jpg

 

108배를 마치고, 차를 우려 마시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람은 마당과 건너 산의 나무들을 마구 흔들어대고 있었다. 앞으로 약 20시간, 내게 주어진 나만의 시간, 무엇을 할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오간다. 몸은 움직여야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마음은 멈추어야 비로소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나보다.
 
입방 전에 받은 워크북도 들쳐보고, 방에 놓였던 파일도 들쳐보고. 아, 편지지다. 파일 안에 편지지와 봉투가 들어있었다. 아내에게 편지를 쓰자. 그런데 무슨 얘길 쓰지?
 
happitory_img_02_1.jpg

 

여든 살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어떤 얘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여든 살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 막연했다. 팔순 때의 부모님을 떠올리니 그때 나와 아내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버님은 몇 해 전에 구순을 넘기셨고, 어머니도 몇 해 뒤에는 구순을 맞으신다. 내가 지금의 부모님 나이일 때를 생각하니, 요즘 부모님께 잘 해드리지 못했던 것들이 자꾸 생각났다. 그리고 앞으로 1년만 더 살 수 있다면 아내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적고,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불행했던 순간도 적었다.
 
108배로 시작한 다음날 아침, 느슨한 내 삶을 다잡기 위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리해보았다. 늘 이런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결심하고 또 다짐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이번에도 그럴지도 모른다. 거창한 것보다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정해본다. 밥 먹으면서 부모님과 대화하기, 밖에서 돌아오면 안방에 잠시 머물며 밖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기 등등.
 
happitory_img_02_03.jpg

 

이제 곧 독방 문이 열릴 시간. 멍하니 창밖의 건너편 산을 바라다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적어보았다.
 
봄 산
 
독방에 앉아 무심코 건너다본 산
진록의 소나무 무리만 뚜렷하다
모든 잎을 떨구어 갈색으로 하나인 또 다른 무리
 
이제 봄이 성큼 다가와
저마다 잎 꽃 피우면
하나인 듯한 저 무리도
백 가지 천 가지 생명 뽐내겠지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슬그머니 편지를 건네고, 샤워하고 나오니 아내 눈이 그렁하다.
 
"내가 지금부터 1년 밖에 못산다면 제일 하고 싶은 일은?"

그림을 그리고 제목을 붙여보라고 하지만 글로 써볼게요. 당연히 가장 먼저 당신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겠지요. 그리고 그것을 온정성을 기울여 하고 싶어요. 당신이 무엇을 하자고 할지 상상해보아요. 1년이라는 제한된 시간이니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가려서 해야 하니까요. 무엇보다 먼저 볕이 잘 들고 문을 열면 풍광이 고운 방부터 마련해서 거처를 옮겨요. 새소리를 들으며 깨어나고 별을 헤아리다가 잠들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주말이면 당신이 좋아하고 보고싶은 뮤지컬이나 음악회에 갈래요. 공연에 가는 길에 꼭 보고 싶은 전시회도 들러요. 세끼 모두 당신과 함께 맛난 음식을 만들어 먹을래요. 딸들이랑 친구들을 초대해서 같이 먹는 날도 있어야겠지요? 도저히 우리가 할 수 없는 요리는 찾아가서 먹고요. 여행은 국내여행을 하고 싶어요. 나도 운전면허가 있으니 교대로 운전하면서 아직 사람이 많이 몰리지 않는 곳을 찾아다니고 잠자리도 숙박업소보다는 민박이나 텐트에서 자고요. 같이 춤을 배워보는 건 어떨까요? 요란하고 급한 춤은 말고 당신과 내가 함께 출 수 있는 춤으로요. 나는 지금껏 지키지 못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당신만을 위한 콘서트를 준비할래요. 이미 예약된 "시월 그 어느 멋진 날에" (노래제목이 맞나요?) 뿐만 아니라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들을 연습해서 불러줄게요.

1년의 마지막 날에는 당신의 방, 우리의 방에서 '함께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할래요. 하루 가지고 부족하겠지만 다 이야기하지 못해도 상관없지요. 우리가 이미 살아온, 행복이니까요.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당신과 행복한 사랑을 나누고 달콤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 거예요. 손을 꼭 잡고서.

 

아내에게 편지 쓰기를 참 잘했다.
독방에 다녀오길 참 잘했다.
 

\

 

글 | 박영대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참가자)
 

원문보기 :

http://www.huffingtonpost.kr/happitory/story_b_15601828.html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이란?    신청하기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

행복공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