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합뉴스] 청각장애인 관객이 '손으로 말한' 사연, 무대서 연극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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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연극 '나의 이야기 극장'…관객 수어통역 내용 배우들이 연기로 구현
코로나19에 화상회의 프로그램 이용 '원거리 관객'과도 실시간 소통
(서울=연합뉴스) 김치연 기자 =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치매 어머니를 혼자 2년째 모시고 있어요. 어머니를 정말 사랑하지만 가끔은 너무 힘들어요."
지난 26일 서울 대학로 이음아트홀. 연극 '나의 이야기 극장' 관객인 청각장애인 고근인(55)씨는 대학로에서 멀리 떨어진 인천 청언성당에서 화상회의 프로그램 카메라에 대고 다소 어눌한 말투로 수어와 함께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청력이 손상되기 시작한 고씨는 인공와우 수술을 한 청각장애인이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다가 감정이 북받친 듯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음을 터뜨렸다.
관객인 고씨가 손으로 털어놓은 사연은 곧 연극 그 자체가 됐다.
이 공연에는 이음아트홀을 찾아온 관객 10여명이 있었고, 멀리 떨어진 인천 청언성당과 주안수어교회에서도 고씨를 비롯한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 관객 50여명이 따로 앉아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공연에 참여했다.
인천에 있는 고씨가 카메라 앞에서 수어통역가와 함께 사연을 이야기하면, 공연장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현장에 있는 진행자 겸 연출자가 화면 너머 관객과 소통하며 대화를 하나의 이야기로 발전시켰다.
사연이 끝나자 무대 위에 있던 배우들이 이를 토대로 한 연기를 시작했다. 현장에 오지 못한 관객들은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무대 위 공연을 관람했다.
치매 환자인 어머니를 2년째 홀로 모시면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가끔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든다는 고씨의 사연은 수어 통역을 거쳐 무대 위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 하나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즉흥연극 '나의 이야기 극장'은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단법인 행복공장과 즉흥연극 전문극단인 '연극공간 해'가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부득이하게 현장 관람 인원수를 제한하게 되면서 올해 처음으로 관객과의 소통에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이번 공연은 비장애인과 청각장애인 관객 간 수어 통역을 거쳐야 하는 어려움과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기술적 문제까지 더해져 기존 현장 중심의 연극보다 진행에 어려움이 컸다. 그러나 무대 위 감동을 전달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1시간 30분가량 이어진 공연에서는 고씨 등 관객 4명의 이야기가 연극으로 꾸며졌다.
작품의 일부분을 담당한 고씨는 10여분간 이어진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진행자가 소감을 묻자 "정말 잘 봤다"며 "내 이야기가 연극으로 펼쳐지는 걸 보니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가 조금은 풀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고씨는 청각장애인들이 진동이나 빛을 통해 소리를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사운드볼'을 이용해 자신의 사연이 무대에서 배우들의 연기로 구현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날 현장에서 연극을 관람한 임모(50)씨는 "5월 공연은 온라인으로 봤는데 이번에 공연장에 와서 직접 보니 더 좋았다"며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노지향 연출가는 27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관객을 현장에 많이 모실 수 없어 화상회의 프로그램의 힘을 빌려 연극을 진행했다"며 "기술적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고 인력도 더 많이 필요했지만 이렇게라도 공연을 진행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이날 공연은 행복공장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으며 삼성전자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후원으로 관람료 없이 무료로 진행됐다.
'나의 이야기 극장'은 내달 22일에도 같은 형식으로 이음아트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