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소식 영등포교도소 문화예술 프로그램_ 열 다섯째 시간
- 김현정
- 1392
- 2
(이 글은 영등포교도소에서 진행중인 행복공장 연극프로그램의 일지입니다. 분량이 다소 길지만, 기록자의 섬세한 관찰로 쓰인 글로, 행복공장 회원들께 그곳의 스케치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열다섯 번째 시간
*시간 : 2010. 6. 22. 화.
*장소 : 영등포 교도소 대강당
*주최 :사단법인 행복공장
*주관 :사단법인 행복공장 /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 공간-해
*참가자 : 바람(노지향/주강사), 엄지(김현정/보조강사), 함께라면(권용석/행복공장 대표), 펭귄(전행오/행복공장 사무국장)
와보노, 오뚜기, 곰, 진짜사나이, 북파공작원, 미카엘, 날으는 점돌이, 꼴통, 희망, 소, 대감마님, 북두칠성, 넌누구냐(이상 재소자 총13명, 별바라기 결석) + 관객 20여명
정리 - 엄 지
영등포 교도소에 연극프로그램을 하러 들락거린 지 거의 넉달, 열 다섯회를 기록한다. 오늘이 미정의 끝을 향한 시작의 첫단계를 일단락하는 날이다. (공연에 대한 자세한 사항이 하단에 첨부된 PDF파일에 있습니다. )
공연발표를 하기로 한 날, 오전 9시도 안된 시간 영등포 교도소 내 출입검문소에는 여느때보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연극발표를 준비하기 위한 행복공장 프로그램 진행팀 4명 외에 오늘 연극의 관객으로 초청된 사람들. 제복이나 수의를 입은 사람들 틈에서 양복에 넥타이를 한 남자들과 젊은 여자들의 풍경이 돌출되어 보였다.
조금이라도 일찍 들어가서 오늘 발표를 위한 준비를 하고자 했던 강사들의 계획은 어그러졌다. 소 사정으로 오늘 연극참가자들이 강당에 모이는 시간이 지연되고, 공연을 위해 준비해간 물건들이 검열에 걸렸기 때문이다. 다섯 개의 나무큐빅과 남성복상의들, 치즈케이크, 씨디플레이어, 그간의 연극수업내용이 남긴 책자 등등에.. 혹시나 음향효과로 사용될까 싶어 요즘 남아공에서 유행하는 부부젤라까지.
소측에 사전 통보가 안 되어있었던 물건들이라 반입을 위한 과정이 꽤 길었다. 우리수업을 담당하시는 주임님의 당황, 긴장해하시는 모습에 보안과직원분의 등장과 반입물건들의 확인까지.. 15번째 소 방문은 강당진입까지 가장 멀고 오랜 여정 기록을 세웠다. 공연 준비 등으로 다급했던 마음도 유랑극단원처럼 물건들을 땅바닥에 늘여놓고 앉아 기다리면서 차츰 비워지게 되었다.
관객들을 검색문 뒤에 남겨놓고 강사팀이 먼저 소내 강당에 들어갔다. 참가자들은 오늘 연주할 악기들을 정비해놓고 있었다. 원으로 둘러앉아 수정해야 할 장면들을 이야기하고, 어떤 점을 주의하고 어떻게 큐를 해야 할 지를 이야기한 뒤 강단 아래 객석 앞을 무대로 정해 큐빅들을 배치하였다. 그리고는 곧 들어오는 관객들을 맞아 곧바로 실전. 점돌이의 사회와 바람의 소개. 그리고 시작된 참여연극 <비행기 후진돼? 안돼?!>
야심차게 준비했던 음향들은 정작 공연상황에서는 그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외부 관객 20여명을 앞에 두고 실제 공연상황에 들어간 배우들의 몰입도와 진지함, 재치와 즉흥성은 빛을 발휘했다. 참가자들은 장면소품으로 장기판과 장기알, 초코파이와 면봉, 장갑 등등을 준비하는 치밀함을 보였고, 그로 인해 공연은 더 윤택해졌다.
중간중간 관객의 웃음소리와 탄식소리가 섞여 나왔고, 마지막에는 큰 박수가 흘러나왔다. 다시 마이크를 잡은 바람은 관객들에게 공연에 대한 질문을 받고 공연참가자가 그에 대한 답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연극장면에서 보여진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모색해보도록 독려했다.
연극에서 부모님의 상을 당해도 귀휴 허락을 받지 못해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주인공이 취할 수 있는 행동에 관심이 모아졌다. 주인공의 역할로 들어간 관객-배우는 소내 과장에게 강경하게 항의해보기도 하고, 소내 같은 방 재소자의 역할로 들어간 관객-배우는(*이 분의 후기가 자유게시판에 있어요-편집자 주) 다른 재소자들을 설득하여 귀휴를 못나가는 주인공을 위해 단체 행동을 취하여 항의를 하자고 하기도 했다. 이를 지켜본 재소자들은 교도소 현실에서 그러한 방법들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개개인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타냈다.그리고 소내 재소자, 직원이 모두가 서로 잘 지내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개인적, 인간적인 정이라는 차원에서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시스템이나 프로그램, 재원, 환경 차원에서의 지원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이 같이 논의되었다.
시간 관계 상 연극에서 드러난 소내 생활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나 관객-배우의 개입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못했고, 2부 순서로 넘어가야 했다. 점돌이, 진짜 사나이, 희망, 미카엘의 반주로 모두가 같이 흥겨운 노래를 합창하는 시간을 간략하게 가진 후 곰이 연극프로그램 참가후기를 발표했다. 바쁘게만 돌아가는 시계바늘. 준비해 간 치즈케익을 나누며, 관객과 재소자들간의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다른 소로 이감되는 관계로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 된 넌누구냐에게 롤링페이퍼로 연극프로그램을 같이 했던 모두가 한마디씩 적는 시간을 짬짬이 갖기도 하였다.
시간은 빠르게만 흘러갔다. 컴퓨터 시험을 마치고 참가하게 될 것이라던 별바라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타나지를 않았다. 강당 안에 있던 모두가 큰 원으로 손을 맞잡고 눈을 마주치고 감사인사를 나누며 총총히 자신이 가야할 곳으로 흩어졌다. 재소자들은 열을 맞춰 다시 그들의 자리로 돌아갔고, 소내 강당에 들어갔던 외부인들 역시 열을 맞춰 어렵게 통과했던 검문소 문을 빠져나왔다.
마침이 아닌 쉼.
곧 아마도 다시 시작할 때까지의 긴 쉼표를 찍는다
긴 쉼표 뒤에 누구를 또다시 혹은 새로 만나게 될지.. 기대감으로 기다려야겠다.
,
바람, 함께라면, 펭귄, 엄지
곰, 진짜사나이, 점돌이, 넌누구냐, 와보노, 오뚜기, 꼴통, 미카엘, 북파공작원, 북두칠성, 대감마님, 희망, 별바라기, 소
그리고 수선화가 되어버린 기획팀장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자랑스런 나의 친구 엄지와 그와 함께한 작품동료들..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일지를 보며 함께 순간을 나누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빨랑 빨랑 돈 많이벌어서 행복공장 스폰 하고싶습니다.
마침이 아님 쉼, 쉼을 위해 행진하는 세상의 모든 가치있는 이들에게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