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 손을 잡고…은둔 청년들의 ‘덜 무서운’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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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고립 경험 당사자 8명이 만든 무대…“대견하고 대단하다”
지난달 29일 저녁 6시 30분 서울 종로문화체육센터 1층 광화문 아트홀에서 열린 연극 ‘우리가, 우리를’. 은둔·고립 경험 당사자들이 배우로 무대에 올랐다. 안 무서운 회사 제공
지난달 29일 저녁 6시30분 서울 종로문화체육센터 1층 광화문 아트홀에는 연극 ‘우리가, 우리를’이 시작하기 30분 전부터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공연장 출입문 옆 게시판에는 손글씨로 쓴 쪽지들이 붙어있었다. ‘세상을 안 무섭게. 모두의 행복한 세상을 위하여’ ‘남을 돌보기 전에 너를 먼저 돌보는 게 먼저야’ ‘항상 응원합니다’.
저녁 7시가 되자, 어두운 무대 위로 다섯 명이 오르며 공연이 시작됐다. 세찬 바람에 몸으로 표현한 나무는 흔들렸고,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했다. 누군가가 말했다. “사막에도 꽃이 피는데 너는 왜 자라지 못해. 네가 약한 거야.”
연극 줄거리는 이렇다. 오랜 시간 세상과 단절됐던 지훈이 같은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돕는 ‘안 무서운 회사’를 설립한다. 질책하는 ‘무서운 회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재정난과 사회적 편견 탓에 버틸 수 없었던 지훈은 갑자기 사라지고, 지훈의 도움으로 재고립의 위기를 극복해왔던 이들은 지훈을 추억하며 ‘덜 무서운 회사’를 만든다. 기댈 곳과 그늘 없이 세찬 바람에 싹을 틔우지 못했던 이들은 마지막엔 서로가 서로에게 그늘이 되어 숲을 이룬다. 공연의 마지막 대사는 ‘우리가 우리를 도와 숲이 되고 온 세상에 쉴 수 있는 그늘이 되길’이다.
이날 연극무대에 오른 배우들은 은둔·고립 경험이 있는 청년 8명이다.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10년이나 사회와 단절한 이들이다. ‘덜 무서운 회사’를 차린 박종훈역을 맡은 김안민(가명)씨는 5살때부터 20살까지 가정폭력을 겪으며 5년 동안 고립된 생활을 했다. 1인 다역을 맡은 오지은(가명)씨는 고등학교 졸업 뒤 손가락을 다치면서 악기를 다룰 수 없게 돼, 은둔과 재은둔을 반복했다. 지은씨는 5년 동안 인터넷을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했다고 한다. 안민씨는 “이번 연극의 메시지는 은둔을 같이 극복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10여년 간 은둔·고립 경험이 있던 이은지(가명·41)씨는 공연을 본 뒤 “뇌병변 장애 등으로 우울증을 앓아 고등학교 자퇴 뒤 15년 동안 고립과 은둔생활을 했다”며 “무대에 오른 배우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는 “동굴인지 터널인지 모르는 시간을 보내다가 세상으로 나온 지 8년 됐다. 하지만 여전히 재은둔의 위기가 찾아온다. 연대하는 마음으로 퇴근하자마자 공연장을 찾았다”고 했다. 지인의 자녀가 은둔 경험이 있다는 한 60대 여성도 “당사자들이 대견하고, 정치권에서도 이를 사회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무서운 회사’는 실제 연극 내용처럼, 은둔·고립 청년 당사자와 가족 등을 지원하는 회사다. 지난해를 제외하고 2020년부터 매년 ‘은둔고수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은둔고수 양성과정’은 은둔·고립 경험자 가운데 회복상태에 가까운 이들을 선발해 은둔 당사자와 가족을 돕는 지원자 양성 기초 프로그램이다. 약 8개월 동안 한일 양국 은둔 이해. 지원단체 탐방, 자기 이해를 통한 강의제작·기획, 가족 코칭, 치유 연극 등을 통해 당사자와 가족을 지원하는 실무 능력을 습득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재단법인 ‘청년재단’의 ‘체인지업프로젝트’ 지원의 하나로, ‘안 무서운 회사’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사단법인 행복공장에서 치유 연극 분야를 맡았다. 배우들과 100여 시간 동안 함께 공연을 준비한 권예철 연출가는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프로배우보다 훨씬 진정성 있었다”며 “공연을 통해 고통 속에 살아남은 이들이 자긍심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연극은 ‘은둔도 스펙’이 슬로건인 ‘안 무서운 회사’의 유승규 대표를 모티브로 했다. 유 대표 또한 5년 동안 은둔한 경험이 있다. 유 대표는 “제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울면서 공연을 봤다”며 “은둔 청년을 보는 사회적 시선이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출처 : 한겨례 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117215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