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법률신문] 변호사와 연출가의 합작...연극 '숙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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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행복공장', 기지촌 할머니 상처 치유 워크숍
고통의 세월·고단했던 삶의 생생한 고백 무대에 올려
권용석 변호사 "기지촌에 대한 편견 벗는 계기 됐으면"
"마음의 상처를 잊으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 잊혀집니다. 그래도 좀 가벼워지고 있어요. 연극이 없었다면 가슴에 뭉쳐 큰 돌덩이가 되었을 거예요."
지난 2일 오후 5시,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연극 '숙자 이야기'의 무대에 오른 기지촌 출신 할머니의 말이다.
기지촌은 한국전쟁 이후 주한미군이 들어오고 미군기지에 클럽이 생겨나면서 1950년대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여성들은 당시 열악한 경제사정과 사회적 불평등으로 성매매 현장으로 내몰렸다. 이제는 고령이 된 기지촌 여성 대부분은 경제적 빈곤과 신체적 질병, 사회적 낙인으로 끝없는 고통의 세월을 감내하며 살고 있다.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연극 무대에 올랐다.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시작한 도시에서의 가사도우미 생활, 밥 짓기도 빨래도 익숙할 수 없었던 아홉 살 소녀의 고단했던 일상, 미군 기지촌에 흘러들어갔으나 버는 돈은 모두 남동생과 고향집에 보내야 했기에 끝나지 않았던 가난함, 그리고 짧은 행복과 아이만을 남기고 본국으로 떠나 연락이 두절된 미군 남편에 이르기까지 11개의 이야기들은 모두 숙자 할머니의 진짜 이야기다.
이 연극이 탄생한 것은 사단법인 행복공장(이사장 권용석 변호사)이 2012년 2월부터 매주 평택 기지촌 할머니들과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연극치료 워크숍을 진행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할머니들은 고달팠던 삶을 고백하며 조금씩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나갔고, 이를 토대로 연극까지 만들어졌다.
연출을 맡은 노지향 상임이사는 "워크숍을 시작할 당시엔 할머니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기 꺼려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꽁꽁 싸두었던 속내를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다"며 "첫 공연이 끝난 후 할머니들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관객 참여 연극이라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11개의 에피소드가 끝나면 배우는 관객들과 대화에 나선다. 관객들은 직접 무대에 올라 그 배역을 해보기도 하고 다른 상황을 제시하기도 한다. 노 상임이사는 "중요한 건 현재"라면서 "관객이 무대에 올라 과거에 일어난 일을 바꿔 보더라도 실제로 과거의 일 자체가 바뀌지는 않지만 그런 변화로 지금 현실에 좀 더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행복공장은 2009년 12월 '성찰과 나눔을 통한 행복한 세상 만들기'를 모토로 설립된 비영리 단체다. 이사장 권용석(51·사법연수원 21기) 변호사를 비롯해 호인수 신부, 금강 스님, 박중훈 배우 겸 감독, 황선기(46·28기) 변호사, 현진호 교수 등 종교계, 법조계, 학계, 문화계, 의료계, 경제계의 다양한 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행복공장은 다양한 형태의 성찰 프로그램과 함께,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치유프로그램, 캄보디아 도시 빈민가정 교육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행복공장은 2010년에 영등포교도소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2011년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1년 여 동안 워크샵을 각각 진행한 후, 관객 참여 연극을 만들어 공연했다. 오는 18일 오후 2시에는 경기도 의왕시 고봉중고등학교 대강당에서 서울소년원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아름다운 아이들 2014'도 공연할 계획이다.
권 이사장은 "기지촌 할머니들이 사회적 편견과 가난이라는 이중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 이 연극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가난한 시절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할머니들을 이용한 것에 대한 정부 차원의 사과와 할머니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방안이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지민 기자 shinji@lawtimes.co.kr
원문링크: http://www.lawtimes.co.kr/LawNews/News/NewsContents.aspx?serial=88485&kind=AE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