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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월스트리트 저널] 제 발로 감옥에

제 발로 감옥에.…한국의 교도소 표방 이색 명상 센터

Bae Jong-hwa for The Wall Street Journal
파란색 수의를 입고 명상하는 박우섭 씨

사위는 아직 어두컴컴하다. 창틀 사이로 냉기가 스며든다. 벽에는 시계가 없다. 박우섭 씨(58세)는 독방 문 아래쪽 틈으로 아침식사가 들어오려면 좀 더 기다려야겠지, 라고 생각한다. 그는 불면의 밤을 보낸 듯, 면도도 하지 않은 다소 초췌한 모습으로 “이번이 세 번째 수감생활”이라고 말했다. 그는 파란색 수의 차림이다. 가슴에는 번호표가 붙어있다. 그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보려고 애쓴다. 화장실과 작은 세면대, 책상밖에 없는 1.68평(약 5.57m²) 남짓한 공간에서는 사실 명상 말고는 달리 할 일도 없다. 그의 머릿속에 무수한 잡념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감옥에 갇히면 답답할 것 같지만, 오히려 나 자신에 온전히 집중하는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는 1980년대 한국을 휩쓴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가 구속된 전력이 있다. 이번에는 수감을 자청했다. 제 발로 감옥에 들어와 스스로를 가둔 것이다.

학교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야 하고 졸업하면 고액 연봉을 받는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심한 한국에 다소 극단적인 방법으로 심신의 휴식을 제안하는 이색 장소가 등장했다.

권용석 이사장(47세)은 강원도 홍천의 허허벌판에 교도소를 표방한 명상 센터 ‘내 안의 감옥’을 만들었다. 2,448평(약 8,093m²) 정도의 부지에 수감동과 강당, 관리동이 자리하고 있다.

“그때는 일을 손에서 놓는 방법을 몰랐다.”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1990년대 후반 제주지검 공안기획 담당 검사로 일하던 시절을 얘기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에 쫓기는 기분이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권 이사장은 어느 날 오랜 지인인 교도소장에게 치유 목적으로 일주일만 수감생활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일주일이라는 체류 기간은 일을 놓기에는 너무 긴 것도 같았다.

정부와 기업은 근로자들에게 휴가를 길게 쓰라고 강조하는 등, 한국 사회가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조금씩 발전하고 있긴 하지만 한국인들은 여전히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고 있다. 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인의 연간 근로시간은 2,090시간으로, OECD 34개국 가운데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일하는 나라인 것으로 나타났다. OECD 회원국 평균 근로시간은 1,765시간이었다.
장시간 근로는 삶의 질을 해칠 수 있는 이슈다. 2013년 OECD가 실시한 ‘삶의 만족도’ 조사에서 한국은 26위를 차지했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를 4.3점(만점은 10점)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OECD 평균인 6.6점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Bae Jong-hwa for The Wall Street Journal
노지향씨와 권용석씨. 부부는 함께 ‘내안의 감옥’을 운영하고 있다.

‘내 안의 감옥’은 지난해 6월 완공됐다. 권 이사장과 극단 “해”의 대표인 그의 아내 노지향 씨는 1년 동안 20억 원을 들여 독방 28개를 갖춘 이 명상 센터를 지었다. 공사비는 기부를 받기도 하고 친지들로부터 빌리기도 했다. 권 이사장은 돈을 벌기 위해 센터를 만든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방문객들은 독방에서 혼자 명상하는 시간 외에도 강당에서 단체로 명상 수업과 힐링 수업을 받으며 ‘내 안의 감옥’에서 해방되는 방법을 배우고 인생을 반추하는 시간을 갖는다.
부부가 처음 꿈꿨던 대로 센터를 운영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다. 부부는 체류 기간을 최소 이틀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시간을 낼 의지가 없거나 또는 휴가를 마음대로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인들의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도 허락했다. 하루에 최소 한 번 정도는 스마트폰을 확인할 수 있도록 것이다. 권 이사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은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안해한다. 비상 상황이 생길까봐 걱정이 많다. 사실 그런 상황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최근 어느날 아침, 20명 여명이 카톨릭 사제가 진행하는 성격 분석 강의를 듣고 있었다. 나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강의의 목표다. 권 이사장은 ‘내 안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 나와 남을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Bae Jong-hwa for The Wall Street Journal
홍천에 위치한 “내안의 감옥”

쉬는 시간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황급히 휴대전화를 집어들었다. “누가 전화를 했을지도 모르고 문자를 남겼을지도 모르잖아요.” 한 참가자 박성호 씨는 서둘러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하고 새로운 메시지가 오지 않았나 확인했다.
박 씨는 프로그램의 질(質)에 전반적으로 만족한다면서도 시설이 진짜 감옥처럼 열악했으면 자기 절제에 더 도움이 됐을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감옥이라고 하기엔 너무 깨끗하고 따뜻하다.”

수감생활은 육체적으로는 제약을 줄지언정 숨 가쁜 현대생활에서 해방된다는 점에서 정신적으로는 자유를 준다. 실제로 수감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고 영감을 얻었노라고 얘기하는 지식인들과 정치 운동가들이 상당수 있다.
독서광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바쁜 일정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며 “책을 읽기 위해 감옥에나 한 번 더 가야 할 모양”이라고 얘기한 일화는 유명하다.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6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고 10년 동안 가택연금을 당했다. 김 전 대통령은 수감생활 중 쓴 글을 모아 ‘김대중 옥중 서신’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됐던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도 자기성찰을 일깨우는 옥중 서간집의 고전이다.

권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2박3일 프로그램은 너무 짧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정을 늘리면 사람들이 볼멘소리를 하는 게 현실이다. 사람들이 강제로라도 과거를 되돌아보고 긴장을 푸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By Jaeyeon Woo

출처 : http://Full.so/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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