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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감옥에서 온 편지 10] 감옥의 역설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행복공장은 ‘성찰을 통해 개개인이 행복해지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와 갈등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습니다. 3월부터 5월까지 매주말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1.5평 독방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24시간의 고요를 통해 내가 새로워지고 우리 사는 세상이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happitory.org/relay_intro 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감옥에서 온 편지 10] 감옥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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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런데 독방 감옥을 찾아 들어간다니......' 내가 1박 2일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와 지인들에게 내 경험을 털어놓았을 때 첫 반응은 모두 '의아하다'는 것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내가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가졌던 의문 그대로.

 

'내 안의 감옥'에 들어가기 전, 감옥에 대해 연상되는 이미지는 음습하고 침침한 서대문형무소나 긴박감과 폭력이 넘치는 미국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가 전부였다. 행복공장이 마련한 감옥은 이런 상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개미 한 마리도 무서워하는 숙녀분이 지내기에도 편안할만큼 깨끗한 시설에 깔끔한 먹거리까지. 게다가 비상시에는 내부에서 열고 나올 수 있는 장치에 비상구까지 준비돼 있으니, 석호필처럼 몸에 문신으로 탈출로를 새기고 들어갈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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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감옥은 감옥. 오후 2시 수감 후 밖에서 잠그는 시건 장치 소리, 문 아래 달린 배식구를 통해 전달되는 두 끼의 식사, 휴대폰을 포함한 일체의 사물금지, 특히 감옥에서도 수감자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독방'이라는 사실은 이곳이 감옥 밖과는 다른 공간임을 분명히 해준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이곳은 색다른 감옥이다. 사회생활을 경험한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으면서도, 막상 할 일이 없으면 낙오자가 된 듯 뭘 할지 모르고 다른 '일'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 생각을 정리해 보겠다며 찾아간 템플스테이마저도 정해진 일과에 따라 움직이느라 바쁘다. 여기에는 어떤 일과도 없이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생각에 몰입할 수 있다. 자그마한 다기세트와 탁자, 양변기, 세면대, 침구가 전부. 1.5평의 작은 독방은 이런 몰입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풍족한 공간이 된다. 나처럼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도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창문은 사유의 우주로 나가기에 충분한 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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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감을 예상했던 밀폐된 독방 안에서 감옥 밖에서는 누릴 수 없는 자유를 만끽하게 되는 이 역설은 무엇이라 설명하기 어렵다. 독방 한 구석에 낙서처럼 써놓은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의 명언, '인간의 모든 문제는 방에 혼자 조용히 머물러 있는 방법을 모르는데 기인한다'. 그의 명상록 '팡세'에 있는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와 맥을 같이 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자신이 채우고 있는 공간과 욕심이 아니라, 결국 자신이 하는 사유(思惟)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 사유로부터 개인의 도덕이 완성되고, 이를 통해 올바른 사회생활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조정래 선생은 자신의 치열한 저작 생활 40년을 '황홀한 글 감옥'이라는 자전적 에세이 집의 책제목으로 표현한 바 있다. 황홀과 감옥이라는 이 모순되는 표현을 24시간의 수감생활을 통해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나는 이 시간을 통해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오래 전의 초심을 다시 되새기면서 미래를 그려나가는 힘을 얻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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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웬만한 산을 가도, 둘레길을 가도 땅을 밟기 보다는 시멘트길과 나무데크길만을 디디다가 오기 마련이다. 홍천에 있는 이 감옥을 가면 입실하기 전에 행복공장에서 제공하는 마지막 '사식'을 먹고 홍천강 지류의 한자락을 땅을 밟고 도는 산책의 맛을 보너스로 누릴 수 있다. 하루 종일 하늘을 나는 새만큼도 땅을 밟지 않는 우리들에게 폭신한 땅을 디뎌보고 느껴보는 호사 아닌 호사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사회 생활의 한계를 극복하는, 사회 생활로 인한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은 아이러니하게도 고독일지 모른다. 개인은 고독을 통해 자아성찰을 하게 되고, 사회 속 자신의 본모습을 보게 되고, 개인의 한계를 넘어서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닐까. 행복공장의 독방 감옥은 이런 힘을 내 안에서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감옥인 셈이다.

 

글 | 김병철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참가자)
 
원문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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