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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매경프리미엄] '스스로 들어가는 독방' 기자가 24시간 체험해보니

'스스로 들어가는 독방' 기자가 24시간 체험해보니

 

  • 최현재
  • 입력 : 2018.09.1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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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이] '철컥.'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다. 쇳소리의 두께만큼 마음도 내려앉는다. 늘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도 없고, TV도 없으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눌 사람도 곁에 있지 않다. 세상과 고립된 자신만이 1.5평 독방에 담겨 있다. 180㎝가량인 성인 남성 보폭으로 쟀을 때 가로 세 걸음, 세로 여섯 걸음 정도 크기의 방. 바깥 세상과 연결돼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건 커다란 창문밖에 없다. 창 너머 풍경도 인적 드문 평범한 시골 길. 볼 것도, 들을 것도 없는 이 독방에 벌써 수천 명이 다녀갔다.
 

강원도 홍천군 남면에 위치한 `내 안의 감옥`.
▲ 강원도 홍천군 남면에 위치한 '내 안의 감옥'.

2013년 사단법인 행복공장(이사장 권용석)은 강원도 홍천군 남면에 일명 '내 안의 감옥'으로 불리는 홍천수련원을 지었다. 독방 28개, 강당, 강의실, 명상 숲을 갖춘 성찰 공간이다. 다양한 성찰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는 행복공장은 지난해 3월부터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48시간'이라는 성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오롯이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통해 자신은 물론 가족, 이웃들도 돌아보며 성찰하자는 취지다.

처음엔 성찰 기회를 갖자는 마음보다 호기심이 먼저 들었다. 과연 1.5평 독방에 갇힌 나는 잘 지낼 수 있을까. 구석지고 좁은 공간은 취향이긴 하다. 어두우면 더 좋다. 공간은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평소 이것저것 몰입할 거리를 쉬지 않고 찾는 나다. 심심하고 고요한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실험하는 마음으로 이달 7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정규 과정은 48시간이지만 덜컥 겁이 나 24시간 부분 참여를 택했다.
 

`내 안의 감옥` 2층 사진. 계단 양 옆으로 도열한 독방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 '내 안의 감옥' 2층 사진. 계단 양 옆으로 도열한 독방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내게 배정된 방은 206호였다. 독방에 들어서니 한숨부터 나왔다. 흰색 벽지의 독방은 너무나 간소했다. '내 안의 감옥'이란 시설 이름에 걸맞게, 방문 아랫부분엔 배식구가 있었다. 여기로 밥이 들어올 거다. 문 옆엔 커튼을 칠 수 있는 화장실이 있었고, 그 위로는 이불과 베개가 담긴 수납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창문 맞은편으론 세면대가 있다. 세면대 앞엔 거울이 없었으며 옆엔 돌돌 말린 요가매트가 있다. 그 밖에 플라스틱 소재로 된 4층짜리 작은 수납장, 협탁, 황차를 끓여 먹을 수 있는 커피포트와 다기(茶器)가 있다. 협탁 위에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낙서장과 검은 펜, 형형색색의 수성 사인펜들이 놓여 있다. 독방에서 지내며 심심함을 해결해줄 수 있는 건 낙서뿐이라는 직감이 왔다. 낙서하다가 지루해지면 차를 축내고, 창밖을 바라보는 일도 반복될 것이다. 마음속에서 '이걸 왜 한다고 했지'란 말이 계속 아우성쳤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독방 내부 사진. 독방에서 외부와 연결돼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존재는 `창문` 뿐이다.
▲ 독방 내부 사진. 독방에서 외부와 연결돼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존재는 '창문' 뿐이다.

독방에 앉은 채로 창밖의 소나무를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오후 2시, 고요함을 깨는 둔탁한 쇳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문이 잠긴 것이다. 얼마 되지 않아 세 번의 벨 소리가 난다. 스마트폰을 내놓으라는 뜻이다. 배식구 밖으로 폰을 놓아두고 다시 창문 앞에 와 앉았다. 수거해가는 소리가 들린다. 외부 세계와 단절되는 순간이다. 고립감이 들 줄 알았지만 의외로 후련했다. 초조하지도 않았다. 스마트폰 중독자는 아니었다는 생각에 잠시 기쁘기도 했다. 하지만 몰입할 것 없이 꼬박 하루를 소진해야 하는 과제를 떠올리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독방엔 시계도 없다. 밖에서 1시간 간격으로 울리는 괘종시계 소리로 시간을 짐작할 뿐이다.

일단 요가매트를 펴고 누웠다. 요가는 할 줄 모른다. 운동과 친하지 않기 때문에 수행을 위한 108배를 할 생각도 없다. 누운 채로 창밖을 한참 바라봤다. 당연히 심심하다. 협탁을 창문 앞으로 가져다 놓고 낙서할 준비를 했다. 독방에 들어오기 전에 행복공장 측에서 나눠준 워크북을 펼쳤다. 지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질문들로 가득 차 있다. 인생 그래프 그리기, 행복했던 순간, 불행했던 순간, 1년밖에 살지 못한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들, 지난 삶에 대한 판결문 쓰기 등이다. 하루 동안 다 쓰기엔 벅차 보였다. 두 가지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행복했던 순간과 불행했던 순간.

먼저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봤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평소 갖고 있던 관념 때문이라고 의심했다. 그간 행복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있다 하더라도 순간일 뿐, 시간이 지나면 휘발되고 마는 것. 그래서 행복은 과거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지론이었다(물론 개똥철학이다). 없다고 생각하는 걸 찾으려니 몸이 힘들어진다. 물을 끓여 차를 마시기로 했다. 차를 마시고 정신이 맑아지면 떠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었다. 괜한 황차만 축낸 것이다. 행복 파트를 건너뛰고 불행했던 순간으로 넘어오기로 했다.

불행했던 순간은 많다. 행복과 달리 불행은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도 현재에 영향을 끼친다. 어떤 불행은 한 인간의 생애 전체를 규정하기도 할 만큼 강력하다. 불행했던 기억이 선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를 돌아본다. 다른 친구들과 많이 비교당했던 어린 시절, 이유 없이 친구들에게 상처준 일과 상처받은 일, 결정적인 순간 비겁했던 내 모습, 여자친구와 아프게 헤어졌던 일…. 끝이 없다. 불행은 이진법이다. 내 탓이거나 남 탓이거나. 기억을 더듬어 보니 불행했던 순간의 대부분은 내 탓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잊고 싶어진다. 하지만 잊히지 않는다. 주워담을 수 없는, 불행했던 시공간이 방 안에 흥건하다. 떠올려야 하는 당위와 망각하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자맥질하다보니 몸이 지친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 있었다. 괘종시계 소리도 잊은 채로 몰두해 몇 시인지도 몰랐다. 워크북을 덮고 또 요가매트 위에 누웠다.

불행을 더듬던 몸을 뉘니 육체와 정신이 동시에 이완되는 느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밤하늘을 봤다. 창밖엔 별은 없었지만 풀벌레 소리는 방 안에 가득했다. 누운 상태로 괘종시계 소리를 두 번 들었다. 멍 때린지 1시간이 지났단 얘기다. "아… 좋다." 혼잣말이 나왔다. 데자뷔다. 과거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텅 비어 있던 머릿속이 갑자기 분주해진다. 비슷한 순간은 있었다. 추운 겨울날 단과대 도서관에서 홀로 나와 햇볕을 받으며 뜨거운 커피를 마시던 순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채 홀로 읽고 싶던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쓰던 휴학생 시절. 하나 둘 떠올리니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독방에 발을 들이지 않았던들,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해낼 수 있었을까.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는 저서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서 "행복해지려면 삶에 '리추얼(의식)'이 많아야 한다"고 적었다. 리추얼은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일상적이면서도 반복적인 행위다. 독방 체험을 통해 나에게 필요한 리추얼을 찾았다. 어떤 형식으로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채 홀로 있는 것. 나 자신에게 긴요했지만 갖기 어려웠던 순간. 일상 속에서 잠깐이라도 짬을 내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행복했던 순간을 소환하는, 나만의 의식이 될 테다.
 

독방 안에서 문쪽을 바라봤다. 문 밑 쪽에 마련돼 있는 배식구가 이 곳이 `감옥`임을 일깨운다.
▲ 독방 안에서 문쪽을 바라봤다. 문 밑 쪽에 마련돼 있는 배식구가 이 곳이 '감옥'임을 일깨운다.

평소보다 잘 잤다고 느낀 다음날, 배식구를 통해 들어온 아침을 먹었다. 들깨죽과 반찬으로 나온 오이지, 콩나물무침, 그리고 사과 두 조각과 방울토마토 다섯 알이 전부였다. 가벼운 몸과 맑은 정신으로 퇴소를 준비했다. 또 한 번 철컥 소리가 났다. 문이 열렸다. 나가기 전 '206호 낙서장'을 한 번 더 들춰봤다. 다른 이들이 독방에서 지내며 적은 감상과 소회가 남겨져 있다. 생각의 결은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잊고 지냈던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어느 정도 답을 찾은 듯 보였다. 낙서장을 덮으려는데 나보다 먼저 독방에 들어왔을 누군가가 써놓은 글 한 토막이 시선을 붙잡았다.

"창밖 소나무, 이름 모를 새·벌레 소리…, 어릴 적 토방마루에 누워 노래를 흥얼거리던 나의 모습. 잊고 지낸 나의 모습. 그 행복했던 시절이 이토록 짧은 평화로움 속에서 떠오르는 건 나도 모르게 가둬버린 나의 행복이었나 봅니다."
 

퇴소 때 받은 가석방 증명서. 24시간만 참여했는데도 줬다.
▲ 퇴소 때 받은 가석방 증명서. 24시간만 참여했는데도 줬다.

[글·사진/최현재 기자]

 

원문보기 : https://www.mk.co.kr/premium/behind-story/view/2018/09/2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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