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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CBS노컷] 임순례 "여성이기에 영화 만들기 어려운 환경 벗어나길"

2017년 '릴레이 성찰 프로젝트' 추진위원, 2018년 '명사와 함께 하는 독방24시간'의 첫 명사 임순례 감독님의 소식 전해드립니다.


 

[여성 감독 연속강좌 ③] '세 친구',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한국영화가 '남초화'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장 지난해와 올해 개봉한 상업영화 포스터만 봐도, 여성이 전면에 드러나는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감독도 마찬가지다. 한 해에 200편 안팎으로 제작되는 한국영화 개봉작 중 여성 감독의 작품은 10%도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여성 감독들은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작품을 만들며 관객에게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트랜스: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는 현재 한국영화 안에서 여성 감독의 위치를 묻고, 각 감독의 작가성을 탐구하는 '여성 영화감독 초청 연속강좌'를 3월부터 6월까지 진행한다. 이 중 기사화에 동의한 감독들의 강의를 옮긴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변영주 "계속 욕망하는 사람이 결국 영화를 만든다"
② 이경미 "제가 보고 싶고, 되고 싶고, 꿈꾸는 여성을 그린다"
③ 임순례 "여성이기에 영화 만들기 어려운 환경 벗어나길"




임순례 감독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임순례 감독은 한양대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하다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파리8대학에서 영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단편 데뷔작은 '우중산책',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은 '세 친구'였다. 이후, '와이키키 브라더스', '여섯 개의 시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남쪽으로 튀어', '제보자' 등을 연출했다. 15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과 호평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리틀 포레스트'(2018)가 그의 가장 최근작이다.

17일 오후 5시 59분, 서울 성북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114호에서 '여성 영화감독 초청 연속강좌-임순례의 연대기'가 열렸다. 올해로 데뷔 22년을 맞은 임 감독은 연차에 비해 작품 편수가 많지는 않은 편이라고 소개했으나, 연출작이 10편 넘는 여성 감독은 여전히 드물고 귀하다. 임 감독의 '연대기'가 곧 한국 영화계 내 여성 감독의 발자취를 돌아볼 때 이정표가 되는 이유다.

그가 데뷔하던 시기인 불과 20년 전만 해도 '여성 감독'은 매우 희귀하고 특별한 존재였다. 한국 영화사에서 최초의 여성 감독이 탄생한 지(1955년 '미망인'의 박남옥 감독) 40여 년이 지난 1996년 '세 친구'로 장편 데뷔한 임순례 감독은 '6번째' 여성 감독이었다. 대기업 취직, 대학원 진학이라는 비교적 '안락한 길'을 포기하고 가장 기회비용이 큰 '영화'를 택했지만, 그는 결심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할 만큼 영화에 해 애정이 남달랐다.

임 감독은 1990년 중반에 데뷔해 홍상수, 김기덕 감독과 함께 한국 영화계의 새 흐름을 펼쳤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그가 영화 공부를 할 때만 해도 국내 사정은 열악했다. 대학 내에서 영화 전공하는 학생도, 강의도, 교수도 적었다. 학교 교육만으로는 영화를 향한 갈증을 채울 수 없었다. 프랑스 유학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도 "파리에 가면 정말 영화를 많이 볼 수 있다고 해서"였다. 4년간의 유학 시절 본 1천 편의 영화가 그에게는 자양분이 됐다.

"영화관에서 본 수많은 선배 작가들의 좋은 작품들이 제일 공부가 됐죠. 요즘은 시야 넓힐 경험을 여러 가지로 할 수 있지만 80년대만 해도 외국 여행이 제한돼 있어서 제 첫 여행이 프랑스였어요. 결혼 제도, 연애, 동거 등 여러 사회적 관습이 우리가 (한국에서) 배워왔고 경험했던 것과 너무 달라지면서 프랑스에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제 시야를 열어주고, 제가 닫혀있지 않고 열린 사고를 하는 데 프랑스에서의 경험이 굉장히 좋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다른 문화에서 살아보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영화를 집중해서 봤던 게 도움이 많이 됐죠."

'우중산책',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이어지는 임 감독의 초기 3부작은 꽤 우울한 정서를 지닌다. 그는 "아무래도 감독이 작품을 쓰면 자신이 가진 정서적 기질이 항상 스크린에 반영되는 것 같다"며 "대단히 합리적이고 발전된 프랑스란 나라를 경험하다 여기(한국) 오니까 무질서하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강해서 (영화에) 조금 더 비판적으로 담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데뷔 초 자신의 스타일과 원칙을 지키는 데 주력했던 임 감독은 차츰 관객, 제작자, 투자자를 향한 배려를 더 해왔다. 임 감독은 "감독이 자신의 의도를 강요하기보다, 관객에게 넓은 해석의 여지를 주는 게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 편집에서도 전혀 인위적인 장치를 안 썼다. CG도 거의 안 썼고"라며 "리얼리즘을 강조한 것을 그 당시에는 작가 정신을 지키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너무 무식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세 친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리틀 포레스트', '제보자' (사진=각 배급사 제공)


그에게 새로운 전기가 된 것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흥행이었다. 전작들이 흥행에서 부진했고, 여성 주인공 영화가 잘 된 사례가 적었으며, 거기다 스포츠 영화에 대한 수요도 많지 않았던 때였다. 원하는 만큼 투자를 받진 못했지만 여성 제작자인 심재명 대표의 뚝심으로 영화가 진행됐고, 임 감독은 '꼭 손익분기점을 맞춰야겠다'는 마음으로 '우생순'을 탄생시켰다.

임 감독은 "거기서 제가 처음으로 저의 문법, 저의 고집을 많이 내려놓은 것 같다. '이동 차를 많이 써 주마. 음악도 많이 깔아주마. 편집도 내가 자르고 싶은 것보다 한 템포 먼저 잘라주마' 하면서. 이 영화는 망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 되게 컸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임 감독은 극장에서 '우생순'을 몇 차례 보면서 울고 웃는 관객들의 생생한 얼굴을 봤다. 100만 명이 보고 나와도 99만 명이 돌아서면 잊는 영화가 아니라, 3만 명이 보더라도 2만 5천 명이 기억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그의 생각이 달라진 계기가 여기서 왔다.

임 감독은 "(관객층이) 넓지 않더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깊은 인상을 주는 영화를 하고 싶다는 거였는데, 오래 가는 감정이 아님에도 관객들이 감각적으로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영화에 다양한 기능이 있지만, 불 꺼진 스크린을 2시간 동안 보는 관객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도 상당히 귀한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밝혔다.

현재 임 감독은 다른 사람이 기획하고 각본을 쓴 작품 연출을 활발히 하고 있다. 작품 선택 기준을 묻자 "저는 영화를 통해 한국 사회나 동시대에 사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욕망이 남아있기 때문에,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있는지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제가 뚜렷한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영화를 통해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가를 본다. 정서적으로나 장르적으로 너무 폭력적이거나 호러, 스릴러이면 안 되고 사람들에게 따뜻한 감수성과 사회적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면 어느 정도는 조정해서 작품을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영화감독이라는 '업'이 어떤 의미인지 묻자 "영화를 그만둘까 생각하는 때가 있다. 요즘에도 되게 자주 하고. 그런데 왜 그만둘 수 없을까. 영화는 제게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매개체인 것 같다. 그게 제 사회적 욕심이고, 그걸 아직까지 못 놓고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17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여성 영화감독 초청 연속강좌-임순례의 연대기'가 열렸다. 임순례 감독(가운데)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김수정 기자)


상업 영화에서 여성의 존재가 더 선명해지기 위해서는 연출가, 제작사, 관객, 배우 중 어느 게 가장 중요한지 질문하자 "말씀하신 제작자, 배우, 관객, 감독 다 중요한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영화에 너무 여성 캐릭터가 없고, 여성 감독이나 제작자, PD들이 없고 여배우들도 소비되는 캐릭터 말고 할 만한 역이 없다고들 하잖아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할 수 있는데 저는 배급 구조의 문제인 것 같아요. 개봉 후 3~4일 안에 승부가 나는 상황에서 '리틀 포레스트'는 좀 예외적이었죠. 무언가 굉장히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영화가 아니면 쉽게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잖아요. 

여성 감독이 더 잘 할 수 있는 영화나 여성 캐릭터가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가 되는 거죠. 영화도 결국 소비자와 만나는 시장이기 때문에 그런 잔잔한 영화나 여성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더 많이 찾는다면 나아지지 않을까요. 관객들 취향이 다양하지 않다고 하는 반응도 있지만, 10개 관 중 8개 관에서 같은 영화를 한다면 관객은 그런 영화에 길들여지고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또한 그는 여성이기 때문에 영화 만드는 게 더 어려운 상황이 빨리 개선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사실 굉장히 안타까운 게 좋은 작품을 만든 20~30대 여성 감독님들이 많지 않나. 남성 감독님들처럼 2~3년에 한 번씩 꾸준하게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여성 감독님들은 텀이 너무 길다. 그 다음 작품 만드는 게 너무 힘들고"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영화를 많이 만드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앞으로는) 여성이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 수 없는 환경을 빨리 벗어나길 바라고, 여러분들도 그런 영화(여성 감독의 작품들)를 많이 지지하고 응원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원문보기 : http://m.nocutnews.co.kr/news/4956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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