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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세계일보] <주목, 이사람> 홍천에 '쉼터' 표방한 체험관 짓는 (사)행복공장 권용석. 노지향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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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행복공장’(www.happitory.org)은 성찰과 나눔을 통해 행복의 길을 모색하는 시민단체다.
행복공장의 이사장, 상임이사는 부부인 권용석(50) 변호사와 노지향(51) 극단 ‘해’ 대표가 나란히 맡고 있다. 기자가 서울 관악구 남현동 행복공장 사무실을 찾았을 때 기다리던 권 변호사는 갑자기 조명을 끄더니 행복공장의 활동이 담긴 7분짜리 영상물을 틀었다. 딱 한 사람만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뒤 기자가 어색한 침묵을 깨고자 손뼉을 치자 권 변호사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얼마 뒤 노 대표가 합석하면서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현대인이 처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말하면 이런 겁니다. 기차가 출발하려 할 때 너도나도 헐레벌떡 뛰어서 막 움직이기 시작한 열차에 올라타잖아요. 그런데 정작 그 기차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기존의 습관과 관성 탓에 우리는 멈추는 게 너무나 힘듭니다. 하지만 가끔은 달리기를 멈추고 서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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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홍천군에 짓고 있는 ‘감옥’ 체험관의 현재 사진과 완공 때의 전경을 합성한 조감도. 이 건물 안에 총 32개의 독방이 마련된다. EJ Architects 제공


행복공장이 강원도 홍천군 남면 용수리에 짓고 있는 ‘감옥’은 바쁜 일상 속에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이들을 위한 ‘쉼터’를 표방한다. 감옥이 쉼터라니, 좀 이상하긴 하다. 정확히 표현하면 감옥이 아니라 감옥 형태를 차용한 성찰의 공간이다. 6.6㎡(약 2평)의 비좁은 공간에 혼자 있어야 하고, 문도 마음대로 열 수 없으니까 생김새는 영락없는 교도소 독방이다. 자발적으로 감방에 갇혀 지내며 휴식과 명상을 통해 ‘힐링(치유)’을 경험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감방과 힐링을 결부지은 건 검찰 출신인 권 변호사의 아이디어였다.

“제주지검 검사로 일할 때 공안·기획 업무를 맡았거든요. 눈코 뜰 새 없이 하루가 지나가고 새벽 1시쯤 겨우 퇴근하는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도 힘이 드니까 ‘얼마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교도소 관계자한테 물어봤는데 ‘방법이 없다’고 해서 무산됐습니다.”

권 변호사와 노 대표는 감옥 형태를 차용한 명상 프로그램에 ‘내 안의 감옥’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는 일반인들이 수의를 입고 죄수의 일상을 똑같이 따라하는 교도소 체험 행사와는 전혀 다르다. 절에 머물며 사찰문화를 체험하는 ‘템플스테이’에 빗대 ‘프리즌(prison·교도소) 스테이’란 용어를 검토하다가 막판에 ‘내 안의 감옥’으로 바꾼 것도 그 때문이다. 비록 몸은 ‘감금’됐더라도 명상을 통해 오히려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3월 완공을 목표로 하는 홍천의 ‘감옥’은 1091㎡(약 330평) 부지 위에 관리동·강당동·체험동 3개 건물로 구성된다. 32개의 독방을 갖춘 체험동이 시설의 핵심이다. 일단 독방에 들어가면 관리인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 ‘내 안의 감옥’ 프로그램은 참가자가 4박5일 동안 독방에 갇혀 지내며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잘못한 점은 없었는지 참회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따지고 보면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입니다. 내 육체를 가혹하게 다룬 죄, 욕심과 질투 등으로 내 마음을 괴롭힌 죄, 주변 사람들 기분을 상하게 한 죄, 사회악 앞에서 비겁하게 침묵한 죄, 과소비와 환경오염처럼 지구를 상대로 저지른 죄 등등….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과 같은 것이죠.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에게 ‘내 안의 감옥’ 참여를 권하고 싶어요. 독방에 갇혀 지내면서 훗날 비리 혐의로 구속 수감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면 감히 부정을 저지를 엄두조차 낼 수 없겠죠.(웃음)”


‘내 안의 감옥’은 얼핏 불교의 템플스테이나 가톨릭의 피정(避靜)을 연상시킨다.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내 안의 감옥’은 종교적 색채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권 변호사는 “템플스테이는 기독교인들이 꺼리고, 수도원 피정은 불교도들이 불편해 할 수 있지만, ‘내 안의 감옥’은 종교 행사가 아닌 만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면서 “독방에 갇힌 참가자가 자기 종교의 수행법을 따라 명상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감옥 시설은 단지 참가자가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볼 계기를 제공할 뿐”이라고 말했다.

감옥이라고 해서 감금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참가자들이 강당동에 모여 함께 만드는 ‘치유연극’도 프로그램의 중요한 일부다. 연극 전문가인 노 대표한테 치유연극의 내용과 특성을 물었다.

“감방에 갇혀 지내는 게 혼자서 하는 치유 프로그램이라면 연극은 여럿이 공동으로 한다는 점이 특징이죠. 연극을 통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나 사이의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거죠. ‘개인과 집단의 화해’라고나 할까요. 사실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요인 상당수는 인간관계에서 오거든요. 여럿이 함께하는 연극을 통해 소통의 방법을 배우면 인간관계의 불안감에서도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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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인 권용석 변호사(오른쪽)와 노지향 극단 ‘해’ 대표가 강원 홍천군에 짓고 있는 ‘감옥’ 체험관 모형 앞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현재 ‘내 안의 감옥’ 사업은 전남 해남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 ‘새날을 여는 청소년 쉼터’ 김은녕 목사, 예수성심전교수도회 황지연 신부 등 다양한 종교인이 동참하고 있다. 영화배우 박중훈씨, 인하대 씨름부 장지영 감독 등 문화·체육계 인사들도 사업에 관여한다. 사실 ‘감옥’ 시설을 짓고 운영하는 일은 많은 돈이 든다. 행복공장 측은 부지를 제외하고도 대략 2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부지와 비용 절반은 권 변호사 부부가 충당했고, 나머지는 후원자를 모으는 중이다. 두 사람은 왜 편안한 삶을 마다하고 이렇게 엄청난 일을 벌인 걸까.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 경쟁적이에요. 다들 죽어라 앞만 보며 내달리죠. 계층 간의 반목과 증오가 팽배합니다. 경쟁에서 이긴 쪽도, 진 쪽도 다 불행해질 수밖에 없어요. 천상병 시인이 ‘귀천’에서 노래한 것처럼 인생은 소풍입니다. 세상으로 소풍을 와서 재미있게 놀다가 때가 되면 하늘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경쟁심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괴롭히며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고 있어요. 더 큰 집, 더 넓은 땅, 더 좋은 자동차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거든요. 사람들이 비좁은 감방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며 성찰의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3월에 ‘감옥’이 완공되더라도 곧바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참가자를 모집하진 않는다. 약 2개월 동안의 시범 운영을 거쳐 5월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할 계획이다.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가려는 사람은 광진구 구의동 동서울터미널에서 홍천 양덕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양덕원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해 63번 버스로 갈아 타면 된다. 63번 버스는 하루 4차례만 운행되니까 미리 시간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02)6084-1016 

글·사진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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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segye.com/newsView/2013012202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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