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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도
  • Sep 25, 2012 (23:35:47)
  • 5815

아래글은 '공감'에서 발송한 뉴스레터의 한 부분을  복사 한 것입니다.

 

 

 

이주노동자에 관한 새로운 정부 정책들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성실근로자 재입국 제도, 그동안 이주노동자에게 제공해 왔던 구인업체 명단의 제공 금지, 이주노동자의 범죄 경력과 건강상태 확인 강화 등 모두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크게 제한하는 정책들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조용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회 분위기나 운동 진영의 모습은 이러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주노동자의 노예와 같은 현실과 인권 침해 문제가 한때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우리는 외국인 산업연수생 제도를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외국인 산업연수생 제도를 없애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2000년대 후반 사실상 외국인 산업연수생 제도가 폐지되면서 더이상 이주노동자 문제는 우리의 관심 대상이 되지 못했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이주노동자도 자유롭게 일하고 인간답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히려 범죄의 온상 혹은 일자리를 빼앗는 나쁜 사람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착각에 불과하다.

 

정부는 외국인 산업연수생 제도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이유로 20038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고용허가제법’)을 제정하고 고용허가제를 도입했다. 내국인 노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국가가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지 9년이 지난 지금 이주노동자의 노동 여건은 산업연수생 제도 때보다 더 열악해졌다. 이주노동자는 매월 300시간 가까이 일을 하면서도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으며 이주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폭력, 차별, 부당한 임금 공제, 열악한 기숙사 환경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위험하고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도 이주노동자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이주노동자는 예나 지금이나 강제노동과 노동착취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강제노동 및 노동착취는 고용허가제도 자체에 기인한다. 기본적으로 고용허가제도는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주의 이익에만 초점을 맞추고 만들어진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고용허가제법 제1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고용허가제법 제1조는 이 법은 외국인 근로자를 체계적으로 도입·관리함으로써 원활한 인력수급 및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흔히 고용허가제가 내국인의 일자리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력난에 허덕이는 사업주를 위한 제도였음이 법의 목적에 명시된 것이다. 그렇기에 고용허가제법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업장 변경이 가능한 경우에도 횟수, 업종, 기간을 제한함으로써 이주노동자가 마음대로 사업장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사업장 변경을 막는 것은 열악한 노동 조건의 이주노동자에게 노동을 강제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므로 사업장 변경은 고용허가제의 가장 중요한 이슈다.

 

그나마 지금까지 고용노동부는 사업장 변경을 허가받은 이주노동자에게 구인업체 명단을 제공함으로써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선택권을 일부 인정해 왔다. 이주노동자는 제공받은 구인업체 명단을 보고서 원하는 사업주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64외국인 근로자 사업장 변경 개선 및 브로커 개입 방지 대책을 발표했고, 대책 발표 후 여타 다른 의견의 청취 없이 지침 변경을 통해 81일부터 사업장을 변경하려는 이주노동자에게 그동안 제공했던 구인업체의 명단을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일선 고용센터에서는 사업장 변경을 원하는 이주노동자에게 ‘8. 1.부터는 구직자가 사업장에 연락 할 수 없고 사용자의 연락에 의하여 채용절차가 진행된다. 따라서 외국인 구직자는 언제든지 연락이 가능한 전화번호 등을 반드시 기재해야 한다. 외국인 구직자는 3개월의 구직 기간이 끝날 때 까지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반드시 출국해야 한다. 따라서 취업을 계속하고자 한다면, 고용센터의 알선에 따른 사용자의 면접 요청 등에 적극 응하여 사용자가 채용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만약 합리적 이유 없이 구인 사용자의 면접 요청이나 채용의사를 거부할 경우 2주간 알선이 중단되는 불이익을 입을 수 있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배포하고 있다.

 

법에 의해 허용되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지침을 통해 제한하겠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부당하다. 또한, 변경된 지침은 헌법재판소도 인정한 이주노동자의 직장 선택의 자유, 계약의 자유 및 노동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변경된 지침대로라면 이주노동자는 사업주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줄 것을 기다리는 행위 외에는 어떠한 구직 노력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인업체가 면접을 요청하거나 채용 의사를 밝힐 때 이주노동자는 근로조건 등이 자신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할 수도 없다. 고용허가제법에 따라 사업장 변경 신청 후 3개월 안에 근무처 변경 허가를 받지 못하면 체류자격이 박탈되는 상황에서 구인업체의 면접 요청이나 채용의사를 거부하는 것은 사실상 면접 요청이나 채용의사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변경을 단념하고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계속해야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는 이주노동자에게도 적용되는 근로기준법 및 대한민국이 비준한 취업 및 직업에 있어서 차별대우에 관한 협약(ILO 111호 협약)’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또한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지침을 만들면서 이주노동자의 의견은 철저히 배제하였다. 이주노동자들이 제안한 간담회에도 고용노동부는 참석하지 않았다. 단지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의 잦은 사업장 변경 탓에 이주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할 우려가 있고 이주노동자에게 제공된 구인업체 명단이 브로커에게 전달되어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이 제도를 변경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브로커가 이주노동자로부터 받은 구인업체 명단을 활용하여 알선행위를 하는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또한 고용노동부의 입장대로라면 구인업체에 제공된 이주노동자 명단도 브로커에게 전달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결국, 브로커 개입 방지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고 실상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겠다는 것이 이번 지침의 목적이다.

 

이주노동자와 연대 단체의 반발이 거세지자 고용노동부는 뒤늦게 제도를 일부 변경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골자는 그대로 남아 있다. 사업주로부터 간택되기만을 기다려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도록 한 이번 고용노동부 지침 역시 고용허가제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용허가제가 유지되는 한 고용노동부의 태도는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다. 고용허가제하에서 사실상 정부는 노예 거래상, 사업주는 주인, 이주노동자는 노예와 다름없으며 이것이야말로 합법적인 인신매매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글_윤지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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