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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년 겨울, 아름다운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사람마다 제 안에 여섯 살 정도의 어린아이가 있다고 합니다. 제 존재를 알아주기까지 웅크리고 있을 수도, 지지와 믿음을 받고 웃고 있을 수도 있는 어린아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을 할 땐 서로의 어린아이를 꺼내 보이기에 그렇게 서툴고 단단해지던가요. 행복공장 사람들과 소년원 아이들의 만남은, 그러한 지지와 믿음은 제 안에서도 사랑을 만나게 했습니다.

   행복공장 서포터즈 행봉이 1기로 12월 초엔 <소년원 가족 캠프>를, 12월 말엔 <소년원 연극>을 도와주면서 아이들, 행복공장 사람들과 즐거운 만남이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소년원 아이들은 무한한 빛이었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빛을 보지 못한 채 웅크린 어린아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래서였을까요. 웅크렸던 시간이 있었기에, 나의 시간이란 건 언제나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나의 시간이란 건 오래도록 과거에 멈춰있을 수 있다는 걸.

   이번 겨울 <소년원 연극>은 과거에의 정지, 반복되는 시간에 관한 소년원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왜 아이들은, 우리는 정지한 과거를 살기도 할까요. 풀지 못한 나만의 숙제 같은 게 있기라도 한 걸까요. 처음 아이들을 만났던 건, <소년원 가족 캠프>에서 였습니다.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생각보다 키도 크고, 욕도 시원시원하고, 호기심도 많아 쌤 이건 뭐예요? 저건 뭐예요? 물음표가 끊이질 않던 10대 아이들이었습니다. ‘소년원’ 아이들을 떠올릴 땐 소년원에 속한 아이들이었지만, 가까이 볼수록 소년원 ‘아이들’ 그 자체였습니다. 언젠가 한 아이가 쌤 소년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잘 대답해야겠다 생각하면서도 잘 생각하고 있는 제가 슬퍼졌습니다. 아이들이 입고 있을 소년원이란 옷이 나에게 잘 생각하게 하는구나. 그 후로부터였을까요. 빛을 품고 있는 아이들에 관해 그저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첫째 날엔 자신의 ‘인생 그래프’도 그리고, 하고 싶은 일 20가지, 다시 태어난다면 되고 싶은 직업 3가지를 정해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미래에 관한 여러 생각과, 돈을 벌어 가족들에게 무언 갈 해주고 싶다, 결혼하고 싶다, 검사나 형사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한 아이와 부모님의 마찰도 있었습니다. 자유롭게 정한 것들을 서로 얘기하는 과정에서 거기서 네가 무얼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은 지나가듯 툭 던져졌고, 순간 아이는 숨을 훅 멈췄다 눈을 흘기며 빈정거리듯 되받아쳤습니다. 잠시간의 표현이었지만, 암묵적으로 말해지지 못한 침묵이 있었고 덩어리처럼 쌓이고 쌓여 뭉쳐지고 있었습니다. 그 침묵은 저 또한 어린 시절 부모님과 주고받던 언어, 마트나 길거리를 지나가며 언뜻 듣던 대다수 부모님과 아이의 언어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언젠가 제 어머니는 어른이라고 모든 게 큰 건 아니야 라고 하셨을 때 당시 10대였던 저는 어른에 관한 판타지를 벌써 깨버렸다며 화를 냈던 적이 있습니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이따금 몸이 큰 아이와 아이의 관계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일까요. 서로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이였고, 서로의 빛을 끌어내는 사랑이었다면 참 부럽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둘째 날엔 타임 슬립으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짧은 연극을 만들었습니다. pc방, 경찰서, 도둑질, 가출 등등 이야기는 참 다이나믹 했습니다. 아이들도, 우리도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이들의 다이나믹한 사건 이전엔 어긋나는 관계, 감정의 억압, 터지듯 표출되는 분노가 있었습니다. 누군가와 있을 땐 억눌러야 했던 감정을 친구들과 만나면서 분출할 수 있으니, 자연스레 친구들을 자주 만나려 했던 겁니다. 다만 서로 감정을 다루는데 미숙하고 분출하는 식으로 표현되니 부모님 입장에선 걱정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겠죠. 이렇듯 엉킨 실타래 같은 관계와 감정을 아이들은 연극으로 그려냈습니다. 후반부 연극에서 반복되는 사건을 바꾸기 위한 관객 참여가 이뤄졌을 때,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고, 토닥여주고, 그래서 오늘은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와서 자도 된다는 말만 해도 반복되는 사건은 마법처럼 풀렸습니다. 혹시 고전 개그 핑크 돼지 이야기를 아시나요? 저는 11년 전에 알았던 핑크 돼지 개그를 말하며 낄낄대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립니다.

   <소년원 연극>은 어쩌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서로 알아가기도 고생도 하면서 준비했던 연극입니다. 연극 준비를 하면서 한 아이가 불현듯 화장실에 들어가서 안 나오기도 하고 그 아이를 비난하는 다른 아이들에게 그 애가 더 힘들 거라고 말하시던 노지향 선생님이 계셨고, 체력적으로 힘든 와중에도 아이들을 토닥이던 경옥, 경아쌤, 아이들과 막내 삼촌처럼 장난치면서 잘 놀고 잘 이끄는 나무 기둥 같은 역할을 하면서 후련함과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다고 말하시던 예철쌤, 무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게 힘든 일이었을텐데 열심히 먹으면서 연극도 잘하고 싶어 했고 잘했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16년 겨울, 아름다운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저도 그렇듯 나에게도, 너에게도 아름답다는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돌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겨울 소년원 연극에서 보여준 타임 슬립이 꼭 허구 같은 현실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이들도, 우리도, 모두 혹여나 정지한 시간에 있다면 풀어야 할 숙제를 껴안고 흐르는 물처럼 순간순간을 살면서 행복하길 바랍니다. 즐거운 12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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