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뛰는 세상 걷는 사람들 인터뷰
- happitory
- 4243
- 0
우리신학연구소 발행,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 922호
행복공장이 만드는 제품은 행복입니다
검사 출신의 로펌 변호사가 교도소장(?)을 꿈꾸고 있다. 권용석 변호사를 비롯한 몇몇 종교인, 법조인, 예술인 등이 모여 작년 연말 (사)행복공장을 만들었다.
행복공장은 성찰 프로그램으로 ‘프리즌 스테이’(일반인들이 교도소 형태의 시설에서 자발적 수감생활을 하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프로그램)와 나눔 사업으로 재소자, 새터민, 결혼이주자, 캄보디아 빈민 가정 어린이들을 위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성찰과 나눔을 통한 ‘행복 사회’를 꿈꾼다는 행복공장에서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행복공장 대표 권용석 변호사를 만나고 왔다.
✿ ‘행복공장’은 언제 세워졌고, 지금은 어떤 단계인가요?
2009년 6월에 창립총회를 하였고, 8월부터 사업 준비를 위한 사무국을 운영하였습니다. 12월에 사단법인 설립 허가를 받았고, 금년 2월부터 캄보디아 사업과 재소자 지원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앞으로 계획했던 일들을 차근차근 진행해나갈 생각입니다.
✿ ‘프리즌 스테이’라는 프로그램은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요?
제가 10여년 전 지방에서 검사 생활을 할 때 몹시 힘든 시간을 보낸 적이 있어요. 몇 달 동안을 일주일에 100시간 정도 일하면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고, 복통 때문에 밤새 혼자서 떼굴떼굴 구른 적도 있었습니다. 출혈성 위궤양이었는데 그때 처음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었어요. 제가 엄살이 좀 심해서 별별 생각 다한 거지요. 그 무렵 검찰청사 신축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창문 넘어 철근 메고 가는 젊은 친구가 보이더라구요. 구릿빛 피부, 딱 벌어진 어깨. 저는 그 친구가 오히려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다보면 한번쯤 멈춰 서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할 때가 있잖아요. 그때 저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모든 것을 떠나 며칠만이라도 나 자신과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런 공간으로 교도소를 생각했어요.
희한한 게 몸인 것 같아요. 몸이 움직이면 그에 따라 마음도 따라 움직이고, 관성이나 습관 따라 움직이다 보면 마음도 이러 저리 끌려 다니죠. 그래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을 잡으려면 몸을 먼저 가두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저를 위해서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혹시 저와 같은 사람이 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죄 안 짓고도 갈 수 있는 교도소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행복공장의 성찰 프로그램으로 ‘프리즌 스테이’를 계획하게 된 것이구요.
✿ 행복공장의 프로그램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주시겠어요?
체험교도소는 금년 11월부터 문을 열 예정인데요, 실제 재소자들의 교도소 생활을 기본 일정으로 하되 행복공장 고유의 자아성찰 프로그램이 추가될 거예요.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모의재판과 성찰 연극, 명상 및 참회 등으로 구성할 예정입니다.
나눔 프로그램인 ‘재소자 사회적응 프로그램’은 출소 후 원활한 사회 복귀를 위해 도움을 주는 것으로 예술치료, 인문교양 프로그램, 결연사업 등이 진행될 것이고, ‘새터민과 이주가정 사회적응 돕기 프로그램’은 2010년 현재 1만 5천여명의 새터민과 10만여명의 다문화 가정 구성원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행복하게 안착할 수 있도록 연극교실, 법률,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해요.
또한 ‘캄보디아 빈민가정 어린이 초등교육 지원’으로 하루 1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살아가는 캄보디아 빈민가정의 아이들을 돕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오랫동안 수사 생활을 하였던 친구가 지금 그곳에 나가 있어요.
✿ 막연한 꿈이 현실화 되신 걸로 이해되는데요, 그 과정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검사 시절에 답답할 때가 많았어요.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은 환경적 요인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책임은 혼자 다 지게 되는데 어떨 때는 그런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검사 시절 모임을 만들어 결식아동이나 보육원 원아들을 돕는 일을 하기도 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어요. 저는 권력이든, 재물이든, 명예든 무엇인가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움켜지지 말고 자꾸 흘려보내 남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검사의 시선으로는 이것이 ‘적극적인 범죄예방’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제 처는 연극을 하는데 그 동안 소년원생, 탈북 청소년, 이주 노동자, 재소자들과 다양한 작업을 했어요. 처와 논의하는 과정에서 행복공장을 만드는 데 힘을 더 받을 수 있었고요.
✿ ‘행복공장’의 꿈을 갖게 되신 건 건 얼마나 되셨죠?
제가 검사 생활할 때 지존파 사건이 있었어요. 범인들이 대부분 빈농의 자녀들로 고등학교 중퇴 학력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무작정 서울에 올라와 얻은 첫 직장은 대개 유흥업소였습니다. 자신들에 대한 자존감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 사회의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의 행태를 유흥업소에서 보면서 잘난 너희에 대한 존경심도 사라지고 증오심이 생겼던 것이지요.
지존파가 잡혔을 때 기자들이 물어봤어요. 이러다가 사형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냐고요. 그때 그 사람들은 ‘죽는 거 두렵지 않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했어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생명이잖아요. 자기 생명조차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남을 귀하게 생각할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지 않겠어요?
우리가 서로 나누지 못하고,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지 못하면 거꾸로 나나 내 가까운 사람에게 문제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거지요. 이기적 차원에서라도 서로 나누고 베풀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 이런 것이 행복공장을 꿈꾼 계기였을 겁니다.
✿ 그럼 거의 15년 정도 되신 거네요.
네. 그 동안은 생각만 많이 하고 막상 엄두가 나지 않아 실행에 옮기지 못해 답답했는데, 이렇게 시작하고 나니 즐거워요.
✿ 흔히들, 공장이라면 생산물품을 떠올리게 마련인데요, ‘행복공장’의 공장도 그런 의미
의 공장인가요?
이름 정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행복이라는 말은 공통적으로 생각했는데, 어떤 말을 더할지 어려웠어요. 그러다가 ‘행복을 찾는다? 만든다? 지금이 만약 불행하고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해진다면 어디선가 생기는 것이니까 그래, 공장이라고 하자’ 그런 거죠.
저한테는 행복이란 게 인생의 목표 같아요. 그런데 혼자 행복한 것은 불가능한 것 같더라고요. 제가 아무리 편하고 좋아도 주위 사람이 다 찡그리고 있으면 제 맘이 편치 않았거든요. 함께 있는 사람들이 다 웃으며 행복한 세상, 그게 제가 꿈꾸는 세상이기도 하고요. 그 세상에 저희가 일조를 하면 좋겠고, 그래서 저희 표어는 ‘행복공장이 만드는 제품은 행복입니다.’이구요. 참 ‘행복공장’ 명칭은 제 처가 내놓은 아이디어였어요.
✿ 처음 ‘행복공장’의 팸플릿을 보고는 프로그램이 참 특이하다 싶었어요. 특히 체험교도소 프로그램이 생소했지만 대표님 말씀을 듣고 나니 이해가 가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나요?
먼저 교도소를 지어야 해요. 지정기부금 단체 등록을 법무부에서 추천 받았었는데 마지막 기획재정부에서 반려되었어요. 그래서 지금 미비한 부분 고쳐서 다시 신청했으니 3월 중에는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부지 문제는 강화군과 협의 중인데, 강화군이 땅을 임대해 주면 우리가 건물을 지어서 사용하려고 해요. 건물은 독방 식으로 하고, 크기는 1.5평 정도이며, 한번에 30명 정도 수용될 수 있는 것으로요.
기간은 성인은 최소한 4박 5일, 100시간 정도로 하려고 하는데 거기에도 사실 이유가 있어요. 저는 100시간, 100이란 숫자에 의미를 부여해요. 상투적일지도 모르지만 그 시간이 사람이 변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태어나서 100일, 100일 출가, 100일 기도처럼요. 하지만 현대인에게 100일을 들어가라고 하면 누가 들어가겠어요. 그래서 100시간으로 했고, 그 시간이면 어느 정도 습관에서 떨어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흡연자들한테는 금연도 할 수 있고요.
✿ 세상은 점점 편리함 위주로 진행되고, 사람들도 점점 안락함을 찾아가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을까요?
저는 현대인들이 아침에 태어나서 밤에 잠잘 때까지 참 억누르는 게 많다고 생각해요. 가족, 직장, 상사, 동료, 돈 …… 등. 그런 것들이 나에게 짐이고 내 자유를 구속하는 대상이 될 수 있거든요. 자연히 습관, 관성적인 사고에서 떠나기가 힘든 구조에요.
하지만 교도소에 들어오면 아침부터 밤까지 혼자 있어야 하니까 온전히 나를 만날 수 있죠. 사실 살면서 내가 나를 만나는 시간이 거의 없어요. 저희가 할 교도소 체험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자기 혼자 자기의 길을 찾고, 자기를 돌아보고, 또 상처받은 자신을 위로해주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어떻게 보면 제일 자유로운 공간이 될 수 있을 거예요.
✿ 주위 분들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10-20% 정도는 너무 좋아하세요. 30-40%는 시큰둥하고요. 나머지는 왜 하냐 그러지요. 성인 인구를 2천만 명으로 볼 때 그 중 1%만 참가하신다고 해도 저희가 운영하는 체험 교도소는 넘쳐나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희망적으로 생각해요.
✿ 우리 사회에서 변호사라면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들을 하는데 검사 시절의 경험
외에 이런 일을 하시게 된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사람들이 좋아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고요. 그리고 다들 마찬가지이지만 주위 사람들이 인상 쓰고 있으면 불편해요. 전우익 선생님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이 있죠. 저도 비슷한 생각인 것 같아요.
✿ 주위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을 볼 때 나도 행복하다 이렇게 들리거든요.
그냥 하루하루 돈 벌면서, 술 먹으면서, 웃고 떠들면서 지내는 삶에 만족하기 힘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려면 먼저 내가 행복해져야 되요. 내가 행복해지고,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고, 그러면 또 내가 행복해지고, 서로 상승작용을 불러오는 것 같아요.
✿ 그럼 지금 행복하세요?
일 진척이 약간 느린 것 정도를 빼면 행복합니다. 사실 조금 천천히 가도 상관없는데, 워낙 속도에 길들여져 있어서요.
✿ 끝으로 한 말씀 해주신다면?
저는 우리신학연구소 이사이기도 한데요, 우리신학연구소나 행복공장의 지향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분들이 우리신학연구소와 행복공장 모두에 대하여 관심 갖고 지켜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주위 사람들이 웃을 때 행복하다는 말씀이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행복한 행복공장
에서 행복, 많이 출고해주세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인터뷰, 정리 : 김옥자)
행복공장 / ☎ 02-6084-1016 / www.happitory.org
우리신학연구소 발행,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 922호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