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앙일보] 사람 한 명 구하는 것이 천 명 살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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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아카시아 꽃잎이 시나브로 지고 뻐꾸기 소리 들리기 시작한다. 경기 안성에 수행도량을 만들기 위해 초봄부터 서둘렀는데도 마당에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는 연등 한 줄 달지 못하고 있다. 사숙 스님이 10여 년 동안 일반인과 함께 마음과 몸을 수행한 곳이라 전통사찰로이라기보다 온전히 수행만 하는 곳이라서 더 좋다. 묵은 먼지는 털어내고, 시설은 편리하게 바꾸고, 무성하게 자란 나무는 솎아 베었다. 물 고인 웅덩이는 더 많은 물이 모여들게 하여 연못으로 만들고, 꽃나무도 늦지 않도록 옮겨 심었다.
봄 내내 도량을 살피는 동안 새록새록 새로운 공부를 하고 있다. 움직이면서 공부하는 것을 동중(動中) 공부라고 부른다. 동중공부라도 고요함이 바탕이 되어야 지혜가 나온다. 마음이 고요한 사람은 하나의 일에서 서로의 연관성을 알게 되고, 마침내 통찰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이때의 지혜를 바른 견해라 부르고, 그 작용은 온화한 자비로 표출된다. 평정심을 잃거나 분별심이 일어나면 집착과 욕심이 생겨난다. 그런 사람은 기능인이 되기 쉽고, 행복을 밖에서 찾으려 한다. 결국에는 감정에 삶을 내어 맡기게 되는데, 감정에 막히게 되면 스스로 은둔고립을 선택하기도 한다.
며칠 전 행복공장 ‘성찰공간 빈숲’을 설립한 권용석 변호사의 추모행사를 하는 홍대입구의 연극공간을 찾았다. 무대에서 은둔고립 경험이 있는 청년 네 명이 연극을 마치고 대담을 하고 있었다. 현재 방안에 숨은(은둔고립) 청년들이 서울에 13만 명, 전국적으로 61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0년 이상 고립되었다는 것이다. 저마다 좌절의 경험, 그로 인한 트라우마, 마음의 상처로 인해 은둔을 시작한 것이다.
“저는 은둔 4년차 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왜 은둔에서 벗어나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대로 10년, 20년이 흘러, 부모님이 저를 부양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는 것이, 그래서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채로 사회로 나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제가 한심합니다.”
“저는 우울감과 불안한 마음 때문에 인터넷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가 없습니다.”
지난해 은둔고립 청년들이 긴 은둔에서 나와 100시간의 연습을 하고 무대에 올린 연극 ‘출구 없는 방’의 대사다. 듣는 나도 답답한데 본인들이나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으리라.
“그냥 의지 부족 아니야?” 고립된 청년들에 대한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단순히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은둔고립 청년들은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다시 사회로 나오고자 마음을 먹는 것도 어렵고, 나오고 싶어도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행복공장은 그들의 마음 회복을 돕기 위한 예술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고립을 반복해요. 사람에게 지치고 상처를 받아요. 그래서 숨어버리게 돼요.”
문밖으로 나와 사회생활을 시작한다고 해도 그들 청년들의 재고립 빈도가 높다. 어렵게 세상으로 나온 청년들이 다시 은둔생활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아직은 세상이 무서운 청년들에게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자립을 모색할 수 있도록 자립성장을 위한 기회가 필요한 것이다.
“청소년기 학생들이 한 번이라도 이 캠프에 참여하면 세상을 좀 덜 무섭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습니다.” (차**)
“은둔친구들을 만나서 같이 생활하면서 얘기 나눠보니까 뭔가 놓쳤던 것도 찾아볼 것 같아 좋았어요. 나도 모르게 소심했던 마음들을 열어줄 것 같았어요.” (고**)
“저는 아직까진 슬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연극과 발표를 하니까 제 의견이 세상에 표현되고 그런 것이 너무 기쁘고 밥도 맛있었습니다.” (송**)
“행복공장에서 행복했습니다. 마음의 작은 찌꺼기의 앙금을 연극을 통해 배출하게 하였고 같이 웃고 울고 작은 행복을 발견하였습니다.” (주**)
“감정을 많이 숨기는 게 익숙해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지만 연극을 끝내고 나니 후련하다.” (전**)
행복공장에서는 은둔청년 자립성장을 위한 커피차를 구입하고, 마음회복, 관계형성,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한다. 노인복지나 어린이들을 위한 복지에는 관심이 많은데 활발발해야 할 청년들에 대한 관심은 많이 부족한 편이다. 행복공장처럼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청년들을 위한 일을 하는 곳에 후원하거나 원력을 내는 단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한 사람을 구하면 천 명을 살린다는 마음으로, 안성의 활인선원에서도 도량을 청정하게 고치고, 제일 먼저 귀한 청년들을 위해 무언가 시작해야겠다.
출처: 중앙일보 오피니언 : 삶의 향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4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