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하루 [참가후기] 나를 만나는 하루 7월 (2024.07.19~07.20)
- happi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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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
I think this is a nice experience that everyone should do in a life to regain a sense of time and self. If awareness is gained it improves life attention and gratitude toward want happens.
◆ D**
I spent half of the time working on filmmaking for our Italian documentaries, but the remaining time I appreciate the silence, the place. I think you do a really great job.
◆ 길**
오래 은둔해봐서 알지만 단절돼있을 때 자신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 같다.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했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바로 ‘나’인 것이다. 무능하고 나약하고 한심하고 못난 나를 드러내고 마주하기 싫어서 피해 다녔던 것이다. 흐리멍덩하게 살다가 그런 나를 안아주는 사람을 만났고 나도 나를 안아주기로 했다. 자살기도를 했던 우울한 나에게 편지를 썼다. 그 애는 아픔을 하소연으로 털어놓았고 나는 그 아픔을 이해한다 해주었다. 그 아픔이 나를 나로 있게 해줬고 나를 지켜줬다고. 자연을 지켜보듯이 흐름에 내맡겨보라. 뜻대로 휘어잡을 수 없는 줄 알았으면 미련 없이 내려놓으라.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에 쓸데없이 애쓰지 마라. 힘을 덜어내는 지혜를 전해주었다. 창밖의 나뭇잎을 바라보기도 하고 스트레칭도 해보고 차도 마셔보고 책도 읽었다. 저녁에 갑자기 국밥이 먹고 싶어졌다. 국밥이 내 존재를 달래줄 수 있다고 느꼈다. 살아서 국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 행복했다. 덕분에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
석가모니는 인생은 ‘고’라고 표현했다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보통 ‘그래, 역시 인생은 힘들 수 밖에 없는 거야.’라고 부정적인 생각에 더욱 빠지고는 합니다. 그런데 석가모니가 말한 ‘고’라는 것은 원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고통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원문에서의 ‘고’의 의미는 감각적인 통증이나 행복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고통이 아닌, 그저 마음대로 일이 되어지지 않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행복공장의 ‘나를 만나는 하루’에서는 내 맘대로 되어지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시원한 탄산음료가 땡겨도 가까운 편의점에 나가 음료를 사 먹을 수 없었고, 좋아하는 가수의 음아깅 떠올라 듣고 싶어져도 머릿속으로 반쯤 애매하게 흥얼거릴 수 있는 게 다였습니다. 이곳에 온 것이 자의에 의해 온 것이었음에도 여전히 쉽지 않았습니다. 입소 시간이 되어 관리자분이 문 밖에서 방문을 잠그실 때는, 왜인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고 2시간이 지나자 지루함에 몸서리 처졌으며, 4시간이 지나자 여기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마음의 위기가 왔습니다. 내일 낮이면 모든 제약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는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계속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허락하게 된다면 마음도 결국 이곳에 적응하고 은은한 행복의 노래를 부릅니다. 퇴소시간이 가까워진 지금은 묘한 자부심마저 듭니다. 이곳을 나가도 항상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루 만에 끝나지 않을 훨씬 답답한 상황도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은 여전히 힘들어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24시간이 나를 단번에 성인과 같은 사람으로 바꿔놓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마음의 위기가 왔을 때 ‘너 또 왔구나.’하고 조금은 살갑게 맞아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생은 ‘고’지만, 그럼에도 살만한 게 인생이니까요.
◆양**
아주 오랜만에 단잠을 잤습니다. 불면증이 심해 밤이 되면 아예 잘 생각을 안 하고 이것저거하다 12시가 넘어 쓰러지듯 자는 날이 많았거든요. 갇힌 공간에 있는 게 아니라 둥지 속 같이 아늑하게 느껴지는 게 영 이상했습니다. 직장을 새로 옮기고 새로운 관계 속에서 어지간히 긴장하고 살았나봅니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행복공장 304호 창문 아래 앉으니 엄청난 피곤이 한꺼번에 밀려와 몸이 땅 끝까지 꺼진 듯 잠을 잤습니다. 시간을 알 수 없는 까만 공간 창문에 비치는 나를 보고 “진짜 잘 잤다.” 웃으며 인사하고 앉아 사 놓은지 한 달 넘게 펼쳐보지도 못했던 ‘찍박골 정원’을 읽었습니다. 바닥에 앉아본 지도 누워본 지도 오래 돼 길게 집중할 수 없었어도 작가의 마음이 전달되어 설레는 독서였습니다.
24시간이 2시간 남은 지금 숲속에서 들리는 새소리, 곤충 소리를 좀 더 잘 듣고 싶어 눈을 감아봤습니다. 하루라는 시간이 짧아 뭐 하겠나 싶었는데 깊은 잠과 설레는 독서와 부드러운 차 향을 느끼기에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몸 안에 독소가 빠져나간 듯 굳어진 마음이 말랑해진 듯 맑은 얼굴로 독방을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따뜻한 환대와 정성 깃든 음식!! 행복한 기억 속에 저장했습니다. 넓은 공간을 청소하고 가꾼 행복공장 식구들의 수고에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
◆이**
2017년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무렵으로 기억합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내 안의 감옥’이라는 제목으로 <나를 만나는 하루> 프로그램을 알게 되고 언젠가 참가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마음을 먹은 뒤 ‘성찰공간 빈 숲’에 다다르기까지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정말 우연한 계기로 발견하게 되었지만 짧지 않은 세월을 초월해 마침내 도달한 걸 보면 필연적인 만남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독서가 부족한 탓에 홍천으로 향하는 길에 책 한 권을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며 왔습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어서인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만 같았습니다. 수련원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감상한 뒤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작은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휴대전화는 물론, 책과 신문도 없이 작은 방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란 창 박의 경치를 감상하거나 누워서 빈둥대는 일 혹은 글을 쓰거나 생각에 빠지는 것 정도입니다. 한 번에 두 가지도 모자라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만 같은 현대 사회에서는 ‘한량’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지난 하루동안 작은 방 안에서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웠습니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며 매 순간 떠오르는 감상을 차분히 글로 써 내려갔습니다. 지난 몇 달간 저를 괴롭히던 미래에 대한 고민부터 평소 오가며 떠올리던 감상, 시간을 핑계로 미뤄 둔 글감 등을 천천히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마감 기한이 없으니 내면을 더 깊게 성찰할 수 있었고, 불안하지 않았으며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나를 만나는 하루>를 통해 가장 크게 깨우친 건, ‘불필요한 걸 가지게 되면 정작 중요한 걸 담을 공간이 없어진다는 것이 아닐까.’라는 것입니다. 당장 215호 독방과 제 방을 비교해 봅시다. 215호는 하루 생활에 필요한 것만 있는 반면에 제 방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합니다. 분명 물질적으로는 제 방이 훨씬 풍요로운데 왜 이곳에서 더 여유롭고 풍족하다고 느낄까요? 어쩌면 필요하지 않은데 쌓아둔 물건이 제 눈과 귀를 가려 정작 중요한 것을 파악하지 못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필요하게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하면서 정작 중요한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모든 걸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곤 합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얻고자 타인의 몫을 빼앗고 서로를 해치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인류의 불행은 그릇된 소유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폭정(정치)은 권력에 대한 소유욕, 전쟁(국가)은 패권에 대한 소유욕, 자본주의는 자본, 양극화는 부, 기후위기는 자원에 대한 과도한 소유욕에서 비롯됩니다. 일상에서 친구 혹은 연인 간 발생하는 갈등도 상대를 소유하려는 그릇된 욕망이 문제입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면 매 순간 지금 내리는 결정이 내게 필요한지 생각하는 습관부터 들여야겠습니다.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려다 오히려 자신이 그 물건에 지배 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지, 자신을 절제하고자 합니다. 스물 네 살의 어느 여름날, 1.5평의 독방 감옥에서 저는 비로소 해방되었습니다.
◆장**
우선 이런 기회를 주신 행복공장 홍천수련원에 감사드립니다. 정성으로 맞아주신 모든 관계자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함을 저합니다. 종교를 초월하여 프로그램 운영이 쉽지 않은데 시종일관 참가자들에게 모든 선택권을 주시고 진정한 자유로움(감방구속 빼고)을 준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인데, 오히려 구속됨으로 마음의 구속을 풀었으니 이보다 더한 자유로움이 어디 있겠습니까? 짧은 21시간 나만의 공간에서 무한한 자유를 느끼고 갑니다. 간만에 손글씨도 써 보고... 행복공장의 진정한 취지는 이해키 어려우나 운영하시는 모든 분들의 행복과 자유함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
빈칸이 넓네요. 다 못 쓸 것 같고 쓸 말도 별로 없을 것 같은데. 독방 24시간이 너무 짧아요, 엄밀히 말하면 그 24시간도 안 되고요. 한 2박 3일, 3박 4일 했으면 좋겠어요. 도시락 넣어주셔서 어릴 때 키우던 햄스터가 된 느낌이었어요. 햄스터처럼 귀여워진 느낌. 사육당하니까 편하고 좋더군요. 삶도 이랬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음에도요
낮잠 두 번 자니 하루가 끝나 있더군요. 물론 그것만 한 건 아니지만 살짝 과장하자면요. 30분만 자려고 했는데 저도 모르게 스르르 잠에 오래 빠져서 시간 낭비만 한 것 같아 찝찝합니다. 원래는 독방에서 좌절하고 또 좌절하고 좌절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좌절도 노력이 필요하더군요. 그래서 좌절하고 싶지 않아졌어요. 노력하는 게 많이 힘이 드네요. 책 쪼금 읽기만 해서 시간을 날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글도 썼지만 얕게만 깔짝거리다 끝나는 느낌.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생각나는 건데 뭔가 노력을 했어도 대부분 결과가 제 성에 안 차거나, 약간은 성에 차더라도 잘하려고 엄청 힘을 줘서 굉장히 괴롭고 스트레스받아 미칠 것 같거나 둘 중 하나였다는 거예요. 후자더라도 만족감은 낮아요. 정신적으로 힘들기에 그리 즐겁지 않거든요. 그래서 노력하는 게 싫네요. 노력해도 행복하지 않아요. 노력을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박**
어제 점심 식사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특히 오이냉국은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맛있는 오이냉국은 얼마 만인지. 레시피 상세히 적어가고 싶을 정도입니다. 여러모로 준비가 정말 잘 되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많이 신경 쓰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촬영을 해야 한다니 따라온 곳이지만 창밖 경치도 너무 좋고 특히 이런 고요함, 조용함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기에 아이들에게도 나중에 같이 오자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정말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리고 왠지 또 뵐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배**
지인의 배려로 이곳, 행복공장에 오게 되었습니다. 한참 차를 몰고 오니 천상의 동물 2마리가 저를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맞이합니다. 내가 과연 이 공간에 들어갈 자격이 있나 관찰하는 천사들이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와 같은 안내자가 하루이지만, 인생을 지낼 공간과 시간에 대해 설명합니다. 불편이 편함입니다. 제가 가장 감사하게 생각했던 프로그램은 108배였습니다. 심금을 울려, 결심하게 만드는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신체를 움직여 바닥에 몸을 대니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워 살아가야겠다는 희망을 선사합니다. 순간이 영원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알려주는 충성입니다. 배움은 나를 개선하는 습관의 시작입니다. 저에게 신체의 움직임과 명상을 함께 예술적으로 결합한 총체적인 운동이, 제 삶의 새로운 습관으로 자리 잡도록 오늘부터 실천해보겠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 창밖으로 들려오는 강, 우두커니 서서 나를 응시하는 나무와 풀, 저 멀리서 나를 찾는 두 마리 반려견이 살아 움직이는 신이며 생명이란 사실을 다시 한번 피부로 느낍니다. 독방은 자신을 알아가는 문지방입니다. ‘나’는 저곳에 있지 않고, 신체를 지닌 이곳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흘러가 버리는 야속한 시간을 잠시나마 부둥켜안고 자신의 오장육부를 가만히 볼 수 있게 만들어주신 신 사모님과 행복공장 원장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