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겨례] 6년 은둔한 20대, 방 바깥으로 탈출 성공한 비결은 ‘동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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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고립청년 사회복귀 지원사업 움직이는 섬’ 1기 참여자들이 지난달 27일 홍천 산나물축제 행사현장에서 커피차 ‘영차’를 운영하며 커피를 판매했다.
행복공장 제공
길아무개(27)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은둔 생활을 시작해 6년 동안 방 바깥을 거의 나서지 않았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고, 그나마 얼굴을 마주하는 가족과 갈등했다. 하루 대부분 게임을 했다. 길씨 또한 방 바깥의 삶을 시도해 본 적은 있다. “좋은 일자리를 소개받아서 갔었는데 사람들이랑 관계 맺는 게 두렵고 잘해낼 자신이 없어서 하루 갔다가 그날 그만둔 적이 있습니다.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는데.” 실패의 경험에 다시 위축됐다. 길씨는 “안 좋은 걸 곱씹으면 심리적으로 더 불행한 상태가 돼서 미래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 행복공장은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에서 은둔 고립청년 사회복귀 지원사업인 ‘움직이는 섬’ 1기 수료식을 열어 참여자 10명의 경험을 나눴다. 대부분 고등학교 졸업 후 20대를 고립된 상태로 지냈다. 길씨 또한 그중 한 명이다. 프로그램에서 이들은 6개월 동안 같은 숙소에서 합숙 생활하며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커피트럭’을 운영하며 수익활동을 했다. 전문 심리상담, 사회복귀교육도 받았다. 길씨는 요즘 처음 보는 사람과도 무리 없이 대화한다. ‘사회적 기업의 물류 담당 직원으로 일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꿈도 생겼다. 은둔 탈출에 실패했던 이전의 시도와 무엇이 달랐던 걸까? 길씨는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라고 했다.
프로그램이 집중한 것은 은둔 고립청년이 세상에 나왔다가 다시 은둔 생활로 돌아가는 ‘재고립’을 막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건 방 바깥에도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이 필요했다. 박아무개(30) 씨는 대학 졸업 후 무사히 취직까지 했지만, 직장에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은 후 퇴사와 재취업을 반복하다 3년간 집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퇴사할 때마다 어떤 부분이 힘들었는지, 왜 그랬는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 진짜 문제였다. 박 씨에게 프로그램에서 사귄 동료들이 ‘사회적 안전망’이 됐다. “같이 살고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마음을 열게 됐다 ”는 박씨는 “살면서 처음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고 말했다 .
시민단체 행복공장은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에서 은둔고립청년 사회복귀 지원사업 ‘움직이는 섬’ 1기 참여자 10명의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다.
고경주 기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자신감 또한 중요했다. 바리스타 교육을 받은 이들은 직접 커피트럭을 끌고 지역 축제 현장이나 촬영 현장 등을 돌며 커피를 팔았다. 홍천 산나물 축제에서 3일 동안 커피 1500여잔을 판매해 600만원 가까운 매출을 올린 경험을 참여자들은 자랑스럽게 기억했다. “아르바이트 지원을 많이 했지만 모두 떨어졌었다”던 박아무개(24)씨는 “처음에 손님 얼굴도 못 볼 정도로 여유도 없고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제가 내린) 커피 맛이 아주 좋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3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20·30대 청년 중 5% 이상은 고립·은둔 상황에 있다. 약 54만명이 타인과 교류하지 않고 지내는 셈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고립·은둔 청년(19~34살) 대상 온라인 발굴 및 전담 지원체계를 운영하며 고립·은둔 청년 지원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다.
다만 은둔을 경험한 이들은 “단기적인 사업을 넘어 장기적으로 동료를 만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8년의 은둔생활을 극복하고 은둔형 외톨이 지원 단체 대표가 된 유승규씨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더라도 재고립되는 비율이 45%에 달한다”며 “관계 형성이 가능한 장기 사업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출처: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