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겨레신문] 소년원 아이들, 연극배우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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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치유연극워크숍’ 통해 연기
고아원 버려지고…부모한테 맞고…
과거의 상처 들여다보며 울고 웃어
“연극하며 증오심 조금씩 사라져”
“경찰서 갔어? 경찰서 갔다왔어, 안 갔다왔어.”
아버지가 아들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때리고 발로 마구 찬다.
쓰러진 아들은 “아, 아파”라고 소리치지만 바로 옆에 앉은 엄마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무대 위에선 담배와 술이 등장하고, 시종일관 욕설과 폭력이 오간다. “ㄱ은 6호 처분, ㄴ도 6호 처분, ㄷ은 10호 처분….”
판사역을 맡은 배우가 판결을 내리는 어색한 연기에 객석에서는 “크하하하”하며 폭소가 터졌다.
29일 오후 경기 의왕시 고봉중·고등학교(서울소년원) 강당에서는 ‘아름다운 아이들 2015’라는 이름의 특별한 연극 무대가 펼쳐졌다. 각종 범죄를 저질러 소년원에 온 9명의 학생들은 300명의 관중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놨다.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으로 보내진 사연, 집 나간 엄마를 만났다고 아빠에게 맞은 사연, 편의점에서 담배를 훔친 사연 등이 무대 위에 펼쳐졌다.
빨간색 체육복을 맞춰입은 까까머리 소년들과 가족 등은 ‘남의 일이 아니라는 듯’때로는 웃음보를 터뜨리고, 때로는 눈시울을 붉혔다. “부모님은 한 번 버리고 가면 절대 안 와”,“나 건들지 말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마.” 무대 위 배우들은 가슴 속에 묻어뒀던 속 얘기를 즉석 대사로 쏟아냈다.
‘아름다운 아이들 2015-겨울’은 사단법인 행복공장과 ‘연극공간-해’ 스태프들이 지난 3월부터 매주 1회 서울소년원을 방문해 소년원 학생들과 함께 진행한 치유연극 워크숍의 결과물이다.
소년원 학생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갖고 직접 배우가 돼 연기를 했다. 짜여진 대본이나 대사는 없는 이 연극에서 학생들은 ‘현재의 나’나 ‘과거의 나’가 되기도 하고, 자신의 ‘부모’로 역할을 바꿔보기도 했다.
연극이 끝을 향해 갈 즈음, 무대에 오른 연출자 노지향 연극공간-해 대표가 “소년들에게 담배를 팔던 편의점 주인이 다르게 말했다면 현재 아이들에게 다른 인생이 펼쳐졌겠느냐”고 물었다. 그의 물음에 관객 한 명이 무대 위로 올라와 ‘달라진’ 편의점 주인을 연기했다. 답답하거나 불만족스러운 연극 속 상황을 관객이 직접 바꿔보는 것이다. 노 대표는 “현실에선 과거를 바꾸기 어렵지만 연극이니까 과거로 돌아가 우리의 인생을 한번 바꿔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치유연극 워크숍을 마련한 행복공장의 이사장 권용석(52) 변호사는 “비행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쉽게 손가락질 해도 되는지 알리고 싶었다”며 “(연극을 통해)고개 숙이고 마음을 열지 않던 아이들이 몇 개월 사이 변했다”고 말했다. 극 중 아버지와 헤어져 고아원에서 자란 배우를 연기한 ㄱ군은 “연극을 하면서 누군가를 증오하던 마음이 조금씩 사라져갔고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기억들이 조금씩 없어졌다”며 “앞으로 꿈을 위해 달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의왕/글ㆍ사진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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