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겨레신문] 푸른 수의 입고, 1.5평 독방에 나를 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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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넣어주는 배식구로 본 ‘내 안의 감옥’ 독방 내부. 오른쪽 샤워커튼 안쪽은
화장실이다. |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감옥명상 체험기
푸른 수의를 입고 손바닥만한 독방에
스스로를 가뒀다. 금연, 금주는 물론 독서와 음악감상, 전화통화까지 금지다.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되어 그동안 잊고 지내던 ‘나’를 응시하는
시간이다. 이유진 기자가 직접 참여해봤다.
어찌 알았으랴. 제 발로 독방에 갇힐 줄. 지난달 22일 아침 일찍 강원도 홍천으로 향했다. 사단법인 행복공장(happitory.org)이 진행하는 ‘내 안의 감옥’ 프로그램에 참가하려는 것이었다. 이곳 수련원은 변호사 권용석, 연극인 노지향 부부가 지인들과 뜻을 모아 만든 ‘프리즌 스테이’, 즉 감옥체험 수양관이다. 1.5평짜리 독방에 머무르면서 술·담배는 물론이고 책·컴퓨터·휴대폰과 시계까지도 반납해야 한다.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가는 승합차 속에 있으려니 진짜 감옥으로 향하는 양 마음이 착잡하다.
강원도 홍천군 남면 용수리 130번지. 8264㎡(2500평) 땅에 수감동, 관리동, 강당과 식당 등 992㎡(300평)의 건물이 서 있다. 나무와 콘크리트로 매끈하게 다듬은 현대식 건축물을 보면 미술관이지, 누가 감옥이라고 알겠는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누르고 강당에 들어서니 참가자들이 속속 모여든다. 교수, 판사, 회사원, 공무원, 연극배우 등 하는 일도 다양하다. 낯익은 목소리에 얼굴을 쳐다보니 배우 김호진씨다. “친구의 소개로 오게 됐습니다.” 참가자 13명은 그처럼 추천받아 왔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행복공장 노지향 상임이사는 첫 대면에서 “기왕 공부하러 왔으니 근본적인 것을 해결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긴장감이 흐른다. 자기소개를 하라고 해서 “이곳 밥이 맛있다고 들어서 기대된다”며 애써 웃었지만, 노 이사는 “음식도 간소하게 준비했다”고 한가닥 남은 기대마저 무참히 꺾어버렸다. 이뿐만 아니라 독방에서조차 웬만하면 드러눕지 말라고 한다. 짧은 기간이나마 수련에 집중하라는 뜻인 줄은 알겠지만 세상사에 찌들어온 고단한 몸을 눕히지도 못하게 하니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확 든다.
밖에서 방의 빗장 잠그는 소리에
간이 툭 떨어진다
말이 묵언이지 내 안의 목소리로
귀가 쩌렁쩌렁 울린다
이윽고 울리는 점심식사 종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규율은 만만찮다. 금연, 금주에다 책 읽기, 음악 감상, 전화 통화도 금지되고 말까지 삼가야 한다. 묵언은 수련의 집중을 돕지만, 자기 안의 복잡한 욕망을 오롯이 듣게 된다는 의미에서 또다른 감옥이다. 오죽했으면 한 종교학 교수는 “옛날 절에 들어가 면벽하고 묵언하고 있으려니 내내 섹스하는 상상만 들더라”고 털어놓지 않았던가! 하지만 묵언은 낯선 사람들 눈치를 보거나 애써 사귈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무척 마음에 든다. 설명을 들은 뒤 옷을 갈아입는다. 내 옷을 벗듯 욕망을 훌훌 털어버린다고 생각하면 좋으련만 푸른 죄수복은 차갑기만 하다. 수인번호 ‘상131101311’. 이제 나의 이름은 없고 번호만 남았다.
수감동에 가보니 진짜 감옥처럼 양쪽으로 독방들이 늘어서 있다. 미셸 푸코는 ‘감옥’에 대해 규율로서 신체와 정신을 길들이면서 억압한다고 했지만, 이곳은 바깥세상의 강제와 억압을 버리고 들어온다는 점에서 오히려 ‘해방의 감옥’이라 할 만하다. 독방엔 창살 대신 세로로 유리창이 나 있고, 배식구로는 음식을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방 안에는 변기와 겨우 양치질할 만한 작은 세면대, 깨끗한 이불과 자작나무 책상도 있다. 답답할까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독방은 아늑하고, 창밖으로는 시린 겨울 언덕이 한눈에 들어와 경치가 아름답다. 낡아빠진 내 집보다 낫다는 생각은 잠시, 벌써부터 목줄 묶인 강아지처럼 밥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기다려진다.
점심 식사 종이 울리자마자 총알같이 튀어나가 뷔페식으로 차려진 밥을 챙긴다. 다래순나물을 왕창 집으면서 ‘내 안에 뭐가 있나’를 돌이켜본다. 사흘 굶은 식충이가 들었나? 저녁밥이 매우 적다 들어선지 음식을 퍼담는 손길이 더욱 바빠진다. 식당 벽엔 ‘이 음식은 온 우주와 하늘과 땅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수고로움이 가져다준 선물이니 내가 이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는지 생각하면서 먹게 하소서’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먹을 자격이 있을까? 별로 없는 것 같지만 먹고 일하고 살아야지.’ 물음표와 마침표를 거듭 새기며 우물우물 밥을 씹어 목구멍으로 넘긴다.
첫째 시간은 비움 명상과 빛 수련이다. 밝음으로써 어두운 것을 물리치고 밝고 맑은 기운을 당겨오는 원리인 것이다. 안내자는 “우리 안에는 본래의 ‘참나’가 있지만 평소에는 이를 잊고 산다. 명상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한계를 인식할 수 있고, 우리의 행동이 어떤지, 어떤 집착을 갖고 있는지 비로소 눈치챌 수 있다. 알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얘기를 듣고는 있지만 귓등으로 흐르는 것이 태반이다. 식곤증이라는 ‘사탄’의 유혹에 시달린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야기는 이어진다.
“눈이 바깥으로 향해 있으니, 자기 내부를 들여다볼 겨를이 없다.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처음엔 속이 쓰리고 아프다. 하지만 이것에서 자유로워지면 자신과 타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가르침에 따라 가부좌를 틀고 웬만하면 다리를 풀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명상에 돌입한다. 생각이 떠오르면 버리기를 반복한다. 하늘에 뜬 구름 사이로 흘러나온 빛이 몸의 앞뒤를 씻는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몇번 호흡을 하고 있으니 비로소 숨이 밑으로 쑥 내려간다.
다음날 아침 식사와 산책, 간단한 절 수행 뒤 본격적인 빛 명상에 들어간다. 이번엔 빛으로 몸 안을 씻는다. 빛으로 내 안의 외로움, 한, 증오심, 복수심, 두려움, 의심과 공포도 꼼꼼히 몰아낸다. 독방에 들어가선 다시 한번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한다.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빗장 잠그는 소리가 들린다. 철커덕. 알고는 있었지만 간이 툭 떨어진다. 좋아, 절대 눕지 않고 잠도 자지 않으리라. 오기가 든다. 졸음은 별로 오지 않았지만 마음에선 들끓어오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몇 시에 끝나지? 밖에서 누군가 보고 있겠지? 허리를 더 세워야 해. 호흡은 자연스럽게. 그나저나 점심은 뭘 줄까? 말이 묵언이지 내 안의 목소리로 귀가 쩌렁쩌렁 울린다. 이윽고 울리는 점심 식사 종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나는 역시 한마리 식충이인가. 고개가 푹 떨어진다.
점심 식사 뒤 ‘탈옥’을 했다. 2박3일간의 프로그램이지만 일정상 1박2일만 약속했던 것이다. 서울에서 차를 갖고 온 지인들은 퇴소자를 위해 두부를 준비해왔다. 배웅하던 권용석 이사장은 “탈옥범이 생겼다”며 웃었다. 특히 누가 이곳에 오면 좋겠는지 물었더니 “우리 사회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업가가 평화로워지면 회사가 평화로워지고, 정치인들이 내면을 들여다본다면 정치가 달라질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서울로 돌아오니 미세먼지로 눈앞이 뿌옇고 매캐한 공기에 숨이 턱턱 막혔다. 그날 밤엔 심상 가득한 꿈을 꿨다. 종로통을 걷는데 “한쪽 눈만 뜨지 말고 두 눈을 뜨라”는 표어가 적힌 초상화 판매점이 줄줄이 서 있다. 나중에 꿈분석가 고혜경 박사는 이 꿈을 전해 듣고 “내면의 눈을 뜨라는 신호”라고 풀이했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출처: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614992.html?_fr=mt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