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기지촌 할머니들, 무대에서 삶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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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무대 위에 불이 켜지자 열두 명의 할머니가 걸어 나와 각자 자리에 앉는다. 어떤 이는 누워서 몸을 뒤척이고 그저 끼니를 때우 듯 식사를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홀로 화투 패를 넘긴다.
3일부터 서울 곳곳에서 열리는 서울 변방연극제의 개막작 <숙자이야기>다.
연극은 몇 개의 에피소드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시작한 도시에서의 가사도우미 생활, 밥 짓기도 빨래도 익숙할 수 없었던 아홉 살 소녀의 고단했던 일상, 미군 기지촌에 흘러들어갔으나 버는 돈은 모두 남동생과 고향집에 보내야 했기에 끝나지 않았던 가난함, 그리고 짧은 행복과 아이만을 남기고 본국으로 떠나 연락이 두절된 미군 남편에 이르기까지. 익숙한 듯 익숙해지지 않는, 과거인 듯 과거가 아닌 11개의 이야기들은 모두 숙자 할머니의 진짜 이야기다.
ⓒ문양효숙 기자 |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은 평택 기지촌 할머니 12명과 햇살사회복지회와 행복공장의 활동가들이다.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주거 공간 마련, 심리상담 등의 활동을 펼쳐온 햇살사회복지회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프로젝트를 지원받았고, 성찰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소외된 이웃과 함께해 온 ‘행복공장’,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 공간 ‘해’와 함께 작년 3월부터 4개월간 ‘플레이백 씨어터’(Playback Theater) 워크숍을 진행했다. (* 플레이백 씨어터는 관객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가 바로 연극으로 만들어지는 일종의 즉흥극으로 심리치료 기법으로도 많이 쓰인다.) 행복공장 노지향 대표는 일주일에 한 번씩 기지촌 생활을 했던 할머니들과 만나 자기의 삶을 이야기하고 연극의 한 장면으로 만들었다.
워크숍을 시작할 당시 할머니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기 꺼려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할머니들은 꽁꽁 싸두었던 속내를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워크숍을 이끌었던 행복공장 노지향 대표는 매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어렸을 적 일 중 가장 슬펐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클럽에서 있었던 일 중에 기억나는 일은 무엇이었는지 물었고, 할머니들은 잊고 싶었던, 혹은 가슴 아파 차마 꺼낼 수 없었던 기억들을 하나둘 떠올려냈다.
첫 회기가 끝나고 공연을 제안했을 때, 할머니들은 “싫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며 거부했다. 어찌어찌 올렸던 작년 7월 첫 공연에서 할머니들은 노출을 부담스러워했다. 얼굴도, 이름이 나오는 것도 꺼렸다. 지인들만 참석한 조촐한 첫 공연이었다. 하지만 첫 공연이 끝난 후 할머니들은 달라졌다. 10월 25일 열린 두 번째 공연에는 “누구든 와도 된다”고 했다. 노지향 대표는 “무엇보다 자신들이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받으신 것 같다”고 했다.
“스무 명이 모여 매주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던 과거에서 자유로워지실 수 있었죠. 하물며 공연은 훨씬 공적인 자리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 이야기를 들으러 와주었고, 그 앞에서 자기 삶을 이야기하시면서 당당해지신거 같아요.”
공연과 프로젝트가 끝난 뒤로도 노 대표는 할머니들과의 만남을 끝낼 수 없었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꾸준히 할머니들이 계신 평택을 찾았다. 3개월 전부터는 영상을 사용해 연극하는 모습을 찍고 화면으로 보는 작업을 했다. 할머니들은 관찰자가 되어서 자기 모습을 보며 생각지도 못한 집중력을 보였다.
공연 전날 리허설 현장을 찾았을 때, 무대 위 할머니들에게는 긴장한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할머니들의 말과 움직임은 배우인 듯, 배우가 아닌 듯, 연극인 듯, 그저 삶인 듯 자연스러웠다. 긴장되지 않는지 묻자 두 명의 숙자 중 한 명인 김숙자 할머니는 “첫 공연 때는 많이 떨렸는데 지금은 안 그래. 많이 해봤으니까. 그리고 이건 우리 삶을 말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떨리지 않아”라고 답했다.
김숙자 할머니는 리허설이 끝난 후에도 한 장면을 몇 번이나 반복해 연습했다. 기지촌에서 일하던 숙자에게 남동생과 엄마가 찾아와 돈을 요구하는 장면이었다. 김숙자 할머니는 “내 이야기라 특별히 마음이 많이 간다”고 말했다.
“워크숍 할 때도 이 이야기할 때 계속 울었어. 작년에 공연할 때도 두 번 다 울었고. 마음이 아파. 안 울려고 하는 데 눈물이 그렇게 나는 거야. 한 번도 안 준 적이 없거든. 안 주고는 못 배기니까. 돈 안 주면 나더러 잘 먹고 잘 살라고 소리 지르고, ‘그렇게 잘 먹지 않는다’고 하면 ‘안 먹고 사는데 살은 어떻게 쪘냐’고 막 그랬다니까. 살아계시면 내 엄마이기도 한데 나한테 왜 그랬냐고 따지고 싶어.”
그렇게 마음 아팠던 이야기를 씩씩하게 무대에 올리는 숙자 할머니는 “연극을 하기 전에는 많이 내성적이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쑥스러웠어. 내 이야기, 하기 싫었지. 처음에는 할 말 없다고, 말을 1분도 안 했을걸. 그런데 하고 나니까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고 말도 점점 술술 하게 됐어. 전에는 안 그랬거든. 될 수 있으면 내 모습을 감추려고 했고. 연극하고 나니까 그런 게 없어지고 그래.”
노지향 대표는 지난 1년 넘게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할머니들 사이에 관계성이 생기고 공동체성이 생긴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 왔을 땐 할머니들 한 분 한 분이 전부 외로운 섬 같았죠. 힘들게 사셨고 지금도 힘들고, 어떻게 보면 서로 잘 알고 비슷한 처지일 텐데, 정기적으로 모이고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뭔가를 할 때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어요. 그게 제일 속상했던 것 같아요. 자기 이야기를 잘 하게 된 것도 큰 변화지만 그보다는 서로 걱정해주고 스킨십도 늘면서 관계가 따뜻해진 것 같아서 좋네요.”
공연은 작은 영정 앞에 선 할머니들이 ‘여자의 일생’을 부르면서 끝난다. 이 영정의 주인공은 작년 공연 이틀 전에 돌아가신 여복동 할머니다. 노지향 대표는 당시 공연을 이틀 앞두고 연극에 이 이야기를 넣었다.
“할머니들이 너무 가슴 아파하셨죠. 빈소도 없이 짐짝처럼 떠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럴 거라고,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셨어요. 공연 이틀 전이었는데 그 장면을 만들어서 넣었죠. 모험일 수도 있었죠. 하지만 우리 연극은 평소 생활하듯이 하는 거였으니까요. 막상 무대에 올렸는데 완전히 감정을 잘 드러내셨어요. 본인들의 일이니까.”
이 연극에는 마지막 장면은 있되 결말은 없다. 11개의 에피소드가 끝나면 배우는 관객들과 대화에 나선다. 관객들은 직접 무대에 올라 그 배역을 해보기도 하고 다른 상황을 제시하기도 한다. 노지향 대표는 “중요한 건 현재”라면서 “관객이 바꾸는 건 할머니들의 과거지만 그런 변화로 지금 현실에 좀 더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서 노 대표는 “관객들이 이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난도, 옹호도 하지 않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옛날이야기가 ‘나와 관련 있는 영역’에 들어오게 되면 좋겠어요. ‘국가가 기지촌을 관리했고, 인권을 유린했고……’, 그런 당위보다는 그저 무대 위 할머니가 우리 엄마일 수 있겠구나, 우리 할머니일 수 있겠구나, 그저 삶이었구나 하고 말이에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출처: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