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캄교실」9회 '들풀의 일기'
2011년 6월 5일 일요일
오늘은 우리 동네에서 베캄교실이 열린다
베캄 친구들은 아침부터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약속한 세 시가 되기 전에
두 시부터 한국 친구들이 하나 둘 도착하고
희정은 도반능에게 베트남어를 배우고 있다
늘 그렇듯 오늘도 밝은 얼굴로 웃는 준원
세리는 지난 강화도 여행에서 무리를 했는지 얼굴이 반쪽이다
은영은 오늘 그릴 그림에 필요한 재료를 한아름 안고 콩딱콩딱 부풀어 있다
사마트는 캄보디아 사람들과 일이 있다며 바쁘게 왔다 갔다 하고
반지오는 들뜬 마음에
한국어 공부를 하다 말고 자꾸 자꾸 나와 들여다 본다
용석은 치과 치료를 받고 이가 부어 얼음찜질을 하다가
동진과 어디론가 사라져 낯선 동네에서 간식을 구해 온다
지향은 나폴나폴 바지를 입고 공연장을 살피고
건강한 먹거리를 기르느라 밭에서 땀흘리고 온 파도
남녘땅에서 친구들 보러 먼 길 마다않고 오는 세나
반두는 결석을 신고 하러 왔다
집에 불이 나서 모두 다 타버렸다고 동대문시장에 옷을 사러 간다고
반두가 안 타서 정말 다행이야
(나중에 파도와 준원이 옷과 생활용품을 모아 반두에게 보냈고
반두는 선물을 받아서 기쁘고 고맙다고 했다)
깜짝 선물 : 서수현 문홍식님이 오셔서 조명과 음향에 힘을 보태 주기로 하셨다
어제 연락 받고 오늘 오셨다
부천시청에서 일하시는 서헌성님이 공연 전날 리허설 대관을 도와 주셨다
방금 연락 받고 당장 오셨다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에서 김밥과 빵을 준비해 주셨다
지현이 영상을 동진이 사진을 찍어 주었다
깜짝 소식 :
저, 합격했어요!
도반능과 부티웻이 한국어능력시험에 합격했다
일하면서 공부를 계속 놓치고 있는 나는
한국어능력시험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나는
이 친구들이 얼마나 성실하게 애정을 가지고 한국어를 공부해 왔는지 조금은 알고 있는 나는
친구들이 존경스러웠다
이제 얼음땡의 달인이 된 친구들
무대에서 한 판 뛰어 놀고
조명과 음향을 확인하는 사이
우리들은 서로 나란히 마주 앉았다
친구들의 얼굴을 그려주는 시간이다
짧은 기간 안에 놀고 친해지고 먹고 연극까지 만드느라 아무리 바빠도
가만히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 보는
삐뚤빼뚤 여럿이 조금씩 한 사람의 얼굴을 만들어가는
재미를 묘한 아름다움을
놓치고 갈 수는 없다
이 얼굴 그림으로 은영이 포스터를 만들어 주었다
봄볕처럼 따사로운
우리들의 눈길 손길이 담긴
장난기 가득한 천진난만한^^
선물
그동안 베캄교실에서 만들었던 짧은 연극들 중에는
힘들었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우리가 만드는 연극이
현실을 바로 바라 보고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실험해보는 연극이어서 그럴 지도 모른다
오늘은 한국에 좋았던 것과 미등록 이주민으로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연극으로 발표해 보기로 한다
첫 번째 이야기_쥐 같은 인생
넓은 바다 축제 제주도 배 노래 춤 불꽃
나누어 먹는 요리 초대받음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느끼는 친밀감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송금하면서
도움이 되고 있다는 뿌듯함
그런데 비자 기간이 끝났다
한국에 더 머물 것인지 돌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조금 더 한국에서 일하기로 한다
5개월 동안 월급을 못 받았는데도
미등록이라는 약점 때문에
항의하기도 월급을 돌려 받기도 어렵다
친구들이 도와주어 라면만 겨우 먹는다
단속이 무서워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살지 못하고
항상 조심스럽게 숨어 산다
경찰의 단속에 잡혀
강제출국을 기다리는 미등록 엄마
사라진 엄마를 찾는 아이
아이를 달래는 역시 미등록인 아빠
아이가 계속 울고 있다
어떤 한국인의 질문 :
왜 집에 안가요?
쥐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쫓기며 숨어서 살아야 하는데도
한국에 있는 것이 고향에 가는 것보다 나은가요?
두 번째 이야기_
'임신 축하해~!'
이제 힘든 일 하지 말라고 챙겨 주는 직장 동료들
갈비찜 먹고 싶다고 하면 뻐다귀가 뚝딱 나오는
배려 받는 행복한 장면
'생일 축하해~!'
'저와 결혼해 주시겠어요?'
청혼의 기쁨
결혼을 하고 아기가 생겼다
출산일이 가까워져 병원에 가야 하는데
남편은 고향에 돌아가 있고
등록증이 없다
이대로 아이를 낳으면 고향에도 한국에도 호적에 올릴 수가 없다
친구에게 부탁한다,
'등록증 좀 빌려줘!'
친구 이름으로 아이를 올린 엄마가 결국 말한다,
'너 엄마 해라!'
질문 : 미등록으로 아이를 낳으면 호적에 올리기 어려운 걸 알면서도 아이를 낳아요?
이런 일이 많이 있어요?
의견 : 부모 모두 미등록인 경우, 방에 갇혀 사는 아이들이 많아요
세 번째 이야기_
한국말을 잘 못하는 새로 한국 공장에 온 캄보디아 직원
동료들은 일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회식도 같이 하며 반겨 주고
잘생겼다고 좋아한다
연극을 보고
미등록이 관객이나 우리들에게 중요한 문제인지
공연에 넣으면 좋을지를 의논한다
의견 : 미등록이어서 보험이 없어서 치료를 미루고 못 받는 일이 많아요
우리들은 질문하기 시작했다
자칫
'나라면 그러지 않을 것 같은데, 왜?'
'이해할 수가 없어요, 왜 그걸 견디고 살아요?'
라는 비난을 바탕에 깔고 있을 수도 있는 질문
그렇지만 당신을 이해하고 싶다는 알고 싶다는 관심이 있다는 뜻에서 나온 질문
이제 공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첫 장면은 강화에서 작업했던 내용이다
우리 집에 왜 왔니 노래를 부르며 고향에서 왜 왔는지를 보여 주는 세 장면
- 새로운 문화를 경험, 군인 아버지의 권유, 젊을 때 더 넓은 세상으로 가서 경험을 쌓아라, 드라마 연예인 영향
-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월급이 너무 적어 살기가 어렵다, 한국에 먼저 가서 일하고 있는 친구, 한국에서 일하면 좋다고 홍보하는 라디오 광고 방송
- 집안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다닐 수 없다, 가족도 돕고 학비도 마련해 공부를 계속할 꿈이 있다
나도 얼마 후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바다 건너 멀리 다른 나라로 간다
왜 가려고 하는지 묻고 또 묻는다
한마디 말로 하기 어려운 복잡한 욕망이 있다
덜 부유한 나라의 국민인 나는
그 나라에 불법체류할 의지도 가능성도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열 손가락 지문도 찍었다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베캄교실에서 우리는 참 어려운 이야기를
간단한 말로 간단한 몸짓으로 하고 있다
열정을 다해서 연기하는 들풀(분홍안경).
베캄교실이 탄생되도록 외국인친구들과 행복공장의 다리가 되어주었습니다.
[ 베캄교실 ]
*베캄교실의 '베캄'은 '베트남,캄보디아'의 줄임말입니다. 두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여러가지 놀이, 자신의 경험으로 연극만들기를 통하여 한바탕 신나게!!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갑니다.
일정_9회차 6월5일(매주 일요일 오후 4시지만 이 날은 3시 모임) / 장소 부천 외국인노동자의 집 대강당
주최_행복공장 /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
참가_다라, 도반능, 동진, 들풀, 땅리홍, 마씨미은, 반지오, 부티웻, 사마트, 세리, 세나, 셍펜킴, 은영, 용석, 준원, 지향, 지현, 파도, 희정 (19명)
결석_반두(살림장만), 동오(개인일정), 사라이(피로), 히엔(배탈)
진행_지향(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연극공간-극단 해 대표 / 행복공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