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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시간

*시간 : 2010. 5. 4. 화.

*장소 : 영등포 교도소 대강당

*주최 :사단법인 행복공장

*주관 :사단법인 행복공장 /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 공간-해

*참가자 : 바람(노지향/주강사), 엄지(김현정/보조강사), 함께라면(권용석/행복공장 대표), 펭귄(전행오/행복공장 사무국장), 와보노, 오뚜기, 곰, 별바라기, 진짜사나이, 북파공작원, 미카엘, 날으는 점돌이, 희망, 소, 대감마님, 북두칠성, 넌누구냐(이상 재소자 총13명, 꼴통은 허리통증으로 결석)

 

 

정리 - 김현정 (한양대학교 예술학부 연극전공 겸임교수)

 

 

2주만의 만남이었다. 지난 주 화요일은 소내 취업박람회 행사로 연극수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벽의 보슬비로 젖어있던 땅은 땅+비내음을 계속 풍겨내고 있었고, 잔디깍기가 한창인 잔디밭에선 잔디피 냄새가 진동했다. 철문을 통해 수업장소로 이동하는 길가를 커다란 보라빛 모란이 찬란하게 장식하고 있었고, 구석구석 성실하게 피어있는 여러 가지 색의 봄꽃들은 비가 올듯 말듯 어둡고 무겁게 내려앉은 회색 구름과 꽤 잘 어우러졌다.

 

원형으로 둘러앉아 그간의 안부를 묻는 시간에 나눈 주요 화제는 지난 주 월요일 소내 대강당, 현재 우리의 연극수업이 진행되는 장소에서 있었던 천주교 성가대 공연이었다. 연극수업 참가자 중 8명이 그 공연에 참가하였고, 연극수업에 참여하는 행복공장 관계자들은 공연관람자로 참석하였다. 공연을 본 사람들은 공연을 한 사람들에 대한 감탄어린 소감을 전했고, 공연을 한 사람들은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공연 후의 허탈함, 같은 방 사람들과의 갈등과 화해, 아들이 운동회 달리기에서 꼴찌를 해서 속상해하는 아내와의 전화통화, 동생의 면회, 바쁜 공장일, 허리 통증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변형 게임이 오늘 연극수업의 시작이었다. 게임에 익숙치 않은 초기에는 술래의 지시어로 달리기, 점프, 춤추기, 밥먹기 등이 반복적으로 나오다가 점차 물구나무서기, 토기뜀뛰기, 만세삼창하기, 뒤걸음질치기, 개오줌누기 등등 다양하고 기발한 지시어가 나왔고, 웃음과 활기도 점차 고조되었다.

 

 

이어진 빈대얼음땡 은 이미 여러차례 했음에도 여전히 새로운 여러 가지 변수가 돌출하여 많이 웃으면서 진행되었다. 점돌이는 게임 도중 술래를 피해 무대 밖으로 뛰어내리기도 하였고, 마지막 술래가 된 함께라면은 모두를 아웃시키기 위해 얼굴에서 땀이 흘러 내릴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3개 팀으로 나눠 진행된 가족 조각상 만들기 에서는 가족식사, 가족단체사진 찍는 장면, 어린이날 놀이동산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미끄럼틀을 태워주는 장면, 할머니 칠순 잔치 장면, 아버지와 소원한 가족, 가족 나들이, 가족 안마, 놀이터에서 시소타기, 아빠가 발로 태워주는 비행기, 운동회 달리기, 그리고 어린 시절 가족에게 배척받는 장면 등이 나왔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각 사람의 가족 조각상이 발표되었고, 바람은 가족조각상의 주인공이 동의해준다면 가족에게 외면받는 장면을 연극으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작업을 하는 이유는, 개인의 상처를 들춰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을 통해서 그러한 상처로부터 조금이라도 편해지고 과거 상처로 힘든 지금의 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함임을 밝혔다.

 

조각상의 주인공은 바람의 제안에 동의를 해주었고, 장면을 만들어보는 과정에서 특별히 요구받지 않았음에도, 그에 얽힌 더 많은 이야기들과 그 이후의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모두는 진지하고 심각하게 그 이야기를 경청했고 분위기는 점차 무거워졌다. 바람은 조각상에 나타난 주인공의 심정이 어떠할까를 수업 참가자들이 같이 고민해보도록 안내한 후, 주인공의 입장/역할로서 장면에 들어가 연기를 해보도록 했다. 조각상 속의 주인공은 2살이었지만, 나이에 제한받지 말고, 그 상황에서 주인공이 하고 싶은 말이나 취하고 싶은 행동을 해볼 것을 제안하였다. 주인공의 역할로 들어갔던 참여자들은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비난하기도 했고, 또 사정하고 부탁하기도 했다.

 

주인공의 역할로 들어갔었던 한 참여자는 연기 도중 감정이 복받쳐서 무대 옆으로 나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장면을 지켜보는 참가자들은 “니 맘 다 안다”, “힘내라”, “그래도 부모님이 아직 살아계신 것을 다행이지 않니”, “여기 있는 우리도 그와 같은 아픈 경험이 있다”는 등등의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똑같지는 않지만 아픈 가족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했다. 대역 장면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눈물을 훔치던 조각상의 주인공은 그만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바람은 그 의사를 수용하여, 연극장면을 멈추고 마지막으로 조각상의 주인공이 자신의 대역들에게 심경토로를 해 볼 것을 권했지만, 조각상의 주인공은 거부의사를 밝혔다. 바람은 그런 주인공의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주인공의 의사를 받아들였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여느때와는 다른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다시 의자에 원형대열로 둘러 앉아 준비해 간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모두에게 나눠주면서 수업을 마치게 될 6주후까지 내가 나의 행복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을 약속으로 정해서 편지에 적어오기로 했다. 그리고 모두 손을 잡고 눈을 한번 씩 마주치는 것으로 수업을 정리하였다. 오늘은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참가자들의 뒷모습이 다른 때보다 묵직해보였다. 방에 들어갈 때까지 손을 흔들며 두팔로 하트를 만들어 보이던 작별인사도 오늘은 없었다. 이름을 불러 다시 한번 눈을 마주치고 손을 흔들었다.

 

불교신자인 소가 석가탄신일 기념으로 정성스럽게 만들어 행복공장 강사들에게 선물한 화사한 종이연꽃을 흔들거리며 철문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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